원격진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두고 의견이 뜨겁게 충돌하고 있다. 의료계는 강력대응을 천명했고, 정부 고위관리는 의(醫, medicine)의 개념과 철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는 말을 내뱉고 있다. 의료(medical practice)의 형태가 발전 할지, 저급한 의료공급체계를 만들어 갈지 확신할 수 없다. 의(medicine)의 개념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진화되는 것인지 아니면 변질되는 것인지 잠시 숨을 돌리고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

의(medicine)의 현대적 정의는 의학(medical science)+의술(medical technique)+의료 (medical practice)가 합쳐진 복합학 또는 융합의 학문이다. 이중 의료(medical practice)는 의과학이 아닌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의 문제다. 학문적으로 보면 의학과 의술을 포함하는 '생명과학' 외에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보태져야 적절한 의(medicine)를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해 의(medicine)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의료는 제 역할을 하기 힘든 것이다.

원격의료의 도입에 앞서 우리나라 실정에서 깊이 성찰하고 갖추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충분한 연구와 문제점을 파악을 하는 것이 먼저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바늘을 허리에 꿰어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의(medicine)에 대한 철학적 합의점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의료를 시행하는 의료진과 의료를 이용하는 환자, 단일보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심사와 평가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가 모두 의에 대한 공통된 합의개념을 가져야 할 시기이다. 의(medicine)에 대한 철학적 합의와 공감대 없이 추진하는 정책은 의료윤리를 떨어뜨리고 돌아오기 힘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갈 수 있다.

둘째로 정의로운 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문제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편리하다고 다 정의로운 것이 될 수는 없다.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다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다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어느 한 기업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이 누려야 할 진정한 의료의 본질이 훼손되거나 변질된다면 정의로운 정책이 아니다.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떨어뜨릴 수 있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인간을 위협하는 악마의 얼굴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셋째로 원격의료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요 예측을 해야 한다. 실패한 수요예측으로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게 된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국민의 힘든 어깨에 무거운 세금을 더 할 수 있다. 용인 경전철사업, 흉물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지방공항들, 무분별한 의대 설립 추진 등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든 정책실패들이 있다. 모두 정확한 수요 파악을 하지 않았거나 특정기업이나 집단에 유리하도록 짜여 진 왜곡된 수요파악의 결과들이다.

마지막으로 의사단체들은 만약의 경우 원격진료가 도입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각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의사윤리지침, 환자권리장전, 진료권 훼손방지 법안, 진찰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온라인 등을 통해 의료진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도 알려져야 한다.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고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원격의료를 추진한다는 것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의 무모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지금은 서두를 때가 아니라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하고 정리할 시기이다.
이 명 진 원장 (명이비인후과·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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