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보건복지부에서는 사후관리 등을 통해 많은 보험약에 대한 가격을 인하했었다. 이럴 경우 시중에 보험약을 싸게 공급하는 등 귀책사유가 제약회사에 있으므로 제약회사에서 인하된 보험약을 보상토록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그러나 2012년 4월1일부터 시작된 대규모의 보험약가 인하는 불법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사회적 명분과 보험재정 절감이라는 내부적 필요성에 의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부의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회적 명분과 정부의 필요성에 의해 대규모 가격 인하를 단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처리에 대한 정부의 수수방관으로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법상 의약품의 소유는 현 요양기관이므로 소유분에 대한 손실과 이익은 요양기관 몫으로 이는 요양기관과 공급자(제약회사. 도매상 등)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 같다. 이론상으로는 ‘가격인하 전날 전 제품을 반품하고 당일 새로 입고시키면 될 일’이라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약 600개 제약회사, 1800여개 도매상이 8만2000여개 요양기관에 대해 어떻게 재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이 서류 반품을 인정해 줬으니 거래 당사자끼리 해결하라는 말인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귀책사유가 공급자에 있을 때 또는 가격 인하되는 품목이 많지 않아 요양기관 재고분을 충분히 인정해 줄 수 있을 때와는 너무 판이한 현실을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는 제약과 도매가 부담을 안고 요양기관에서 제출한 재고를 대부분 인정하다보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여기에서 삼자의 이해당사자는 서로 다른 동상이몽(△약사회에서는 종전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 △제약회사는 보상금액이 워낙 커서 실재고분 만큼만 보상하리라는 생각 △도매는 제약회사가 해주는 범위 내에서 제약회사에서 보상받고 약국으로 보상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사실 현재 적용하고 있는 실구입가 청구제도는 사용자가 구입한 가격대로 청구하되, 보험재정을 위해 정부에서 정한 고시가를 벗어나서 청구할 수 없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요양기관에서 보유한 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강제 인하 후에도 내가 구입한 가격대로 청구하였을 때, 과연 정부에서 인하된 가격만큼 삭감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정부에서 보험약에 대해 강제 인하를 단행했으면 당연히 요양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고분에 대하여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보험약가 삭제시에도 6개월간 사용하게 해주는 유예제도가 있는데, 하물며 2012년 4월 약가인하분만 하더라도 6507품목, 평균 14%, 1조7천억원을 강제 인하하면서 사후 조치를 시장기능에 맡긴다는 것은 정말 넌센스인 것 같다. 또한 당시 보유하고 있는 재고량 파악뿐만 아니라 그 재고분이 인하 전인지 인하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행정적 낭비와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큰 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았는지를 묻고 싶다.

아직까지 2012년 4월1일 인하된 재고분에 대한 보상도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초 1996품목, 7월1일자로 346개 품목의 대규모 약가 인하가 단행되었다. 정부에서 손 놓고 있는 사이 약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약업계 전체에 큰 혼란이 야기되는 정책을 시행함에도 사후처리에 대한 수수방관적인 정부 태도와 이해당사자들이 자기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을 때, 일선 동네약국들은 깊게 병들고 있다.

정부에서 이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복지부 주관으로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전 요양기관에 보유한 재고분 중 완제품에 대해 가격인하 시행 전월에 반품토록 하고, 보유하고 있는 재고분에 한해 한 달간만 요양기관에서 실구입한 가격대로 인하 전 가격과 인하된 가격 두 가지로 청구토록 허용하는 방법 등 사회적 비용과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대안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일이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필자는 약업계 종사하는 사람들이 평소 지은 죄가 아주 많거나 아니면 너무 착하고 순한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가지 더 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나무늘보’이거나. 필자는 적어도 이 세 번째는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깨어있는 지성인이 되자! 박 정 관 <위드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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