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가 어렵다고 한다. 어려운 것이 제약업계 뿐만은 아니겠지만 앞이 안 보인다고 불안해한다. 지난해 발표한 실적도 좋지 않다. 전체 매출이 줄었고, 이익은 급감했다.
일반적으로 회사경영이 어려우면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다. 그리고 기존의 인력은 사업 재배치를 통해 퇴직을 유도한다. 그래도 어려우면 일부사업에서 철수한다. 제약업계는 아마도 두 번째 단계로 들어 간 것 같다.

그동안은 새해 초 신입사원들이 현장(병원)에 연수 겸 인사를 하러 왔는데 올해는 신입사원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신 경력사원들이 사업장 재배치를 받고 인사를 다닌다. 회사마다 형편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상위 20위 제약회사는 매년 신입사원을 100~200명 정도 뽑았다. 우리나라 제약사가 400~450개 정도 되니까 날아간 일자리 수도 만 명은 넘을 것이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우리나라에 제약회사가 너무 많은 것이 리베이트의 원인이니 제약회사 수를 줄여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 의원이 지적한대로 작년 약값인하 이후 약 40~50개의 제약회사가 문을 닫았다. 대개 영세한 제약회사였다. 그렇지만 그 회사들 대부분은 약국 판매하는 일반의약품(OTC)을 만드는 회사들이다. 병의원의 리베이트와는 별 관계가 없는 회사였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의 실업자가 생겼다.

작년에 약값을 인하하면서 약값인하가 제약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부기관의 연구결과가 있었다. 약값을 인하하면 제약회사가 리베이트영업을 할 수 없으니 자연히 신약개발에 매진할 수밖에 없고, 약가인하로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 간의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제약회사가 대형화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제1의 제약회사인 모 제약회사의 매출규모는 1조원에 약간 못 미친다. 그것도 드링크류 판매를 합친 액수이다. 1조원의 매출 규모로는 블록버스터급의 신약개발은 꿈도 꿀 수 없다. 신약개발은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신약은커녕 바이오시밀러조차도 웬만한 규모의 투자로는 불가하다.

신입사원도 뽑지 못하는 비상상황에서 신약개발에 투자하려는 회사가 있을까? 그리고 기업간의 인수합병은 회사가 가진 가치가 있을 때만 성사되는 것이다. 새로운 제품도 없고 기술력도 없어 망해가는 회사를 인수할 회사는 없다.

어려운 국내 제약업계의 사정을 비집고 외국회사의 새로운 영업방식이 들어왔다. 위탁판매이다. 옛날 같으면 라이선싱아웃 해야 할 것을, 라이선스는 외국계회사가 유지하고 국내제약회사는 약만 팔아 주는 방식이다. 굴욕적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제약회사의 사정이 이렇다. 그러나 영업직원을 내보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저간에 제약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정을 보면서 제약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이 궁금하다. 제약이 산업인가?

김 형 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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