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는 지난 2월 4일 공동으로 리베이트 단절을 위한 자정선언을 하였다. 의약품에 대한 처방의 대가로 제약회사가 의사개인에게 지급하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받지 않음으로써 리베이트 수수로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번 의료계의 리베이트 자정선언은 제약업계의 공정경쟁 규약이 시행 된지 오래되었고, 2010년 쌍벌제가 도입 된지도 거의 3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나왔기 때문에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의사 단체가 리베이트 단절의지를 최초로 천명한 것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의료계의 자정선언의 내용을 보고 아쉽게 느끼는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자정선언은 의료계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고치겠다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정선언의 대부분의 내용은 리베이트를 수수하는 의사들의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정부의 잘못된 약가정책, 낮은 진료비, 제약회사의 복제약 중심의 영업관행 등 때문에 리베이트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리베이트 발생의 주된 원인을 정부나 제약업계에 돌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약제비는 낮추고, 진료비는 인상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리베이트 문제에 있어서 의료계는 별 문제가 없는데 정부나 제약회사에 그 원인이 있으니 문제를 발생시킨 쪽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고, 그 방법은 약가를 낮추고 의사들의 진료수가를 인상하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R&D 등을 고려하여 약가를 고가로 책정하다보니 복제약을 판매하는 제약사들의 경우 자기 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의사들에게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고, 또 진료수가가 낮기 때문에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을 유인이 발생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과제들은 정부, 제약업계, 의료계가 합심하여 해결해 나가야 할 중장기적인 제도적인 과제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의료계의 자정선언이라면 최소한 리베이트를 수동적으로 받거나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의사들이 앞으로는 더 이상 리베이트를 받지 않겠다는 행동선언이 주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의사는 의약품 처방권을 가지고 있어 제약회사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갑의 위치에 있는 의료계가 그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보다 대승적인차원에서 앞으로는 의약품 처방대가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절대로 수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었으면 훨씬 보기가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로 자정선언은 의약품 처방의 대가로 의사개개인이 받는 부당한 경제적 이익만 리베이트로 금지되며, 그 이외의 제약회사의 마케팅 활동과 제약회사의 의사에 대한 학술행사 참여 지원 등은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허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금지되는 리베이트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개개인이 처방대가로 받은 현금 등 경제적 이익만이 리베이트가 아니다. 제약회사가 자사의약품 처방의 대가로 의사에게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은 약사법(시행규칙)이나 공정경쟁규약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형태나 형식이 관계없이 모두 금지되는 리베이트에 해당된다.

요즘은 제약회사가 리베이트를 현금으로 제공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주로 합법적인 마케팅수단을 통하여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제약회사가 의사에게 학술행사 참여를 지원한다던가 임상활동 또는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경우에 그 지원이 처방의 대가로 제공되는 것이라면 그 외관은 합법적으로 보일지라도 리베이트에 해당된다. 리베이트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은 형식이나 외관이 아니라 그 실질이다. 아무리 합법적인 외관을 갖추고 있더라도 그것이 처방의 대가로 제공되는 것이라면 리베이트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료계의 자정선언에 이어 지난 2월 20일에는 제약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제약협회가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자정선언을 하였다. 의료계와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자정선언은 그 자체만으로 크게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선언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자정선언이 말 그대로 선언에만 그치면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고, 오히려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정부가 쌍벌제를 도입한 것은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쪽만 처벌하여서는 리베이트 규제의 실효성이 반감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의약품처방권을 가진 의사가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는 요구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주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 힘이 있기 때문에 받는 쪽부터 바뀌어야 리베이트 관행이 확실히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과거 일본처럼 처방대가로 부당하게 경제적 이익을 수취한 의사들에게 미지근한 처벌을 하는 것보다는 입법취지대로 형사처벌을 하는 등 강력한 법집행 의지와 태도를 보여야 불법적인 리베이트 관행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석 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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