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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선언' 실천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2500년 전 만들어진 히포크라테스 선언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파격적인 개혁 선언 이었다. 당시 성행한 낙태와 독약처방, 환자를 유인하기 위해 동료 의사를 험담하는 행위 등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발이고, 자정선언이었다.

그 후에도 많은 의사들의 자성의 목소리와 노력으로 의료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 산욕열을 막기 위해 막강한 의사권력층에 대항했던 제멜바이스의 절규가 있었다. 1910년에는 미국의 flexner는 체계화된 의과대학 과정을 만들어 비과학적이고, 돈과 권력욕에 묶여 있던 미국의료를 개혁했다.

이러한 의료개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을 알 수 있다. 먼저 의료개혁은 의사들이 개혁의 대상으로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역할을 할 때 빛을 발해왔다는 사실이다. 의료개혁의 시점마다 스스로 개혁할 문제를 발견하여 용기 있게 오픈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의료개혁의 결과로 의학은 발전해왔고, 환자들의 생명은 보호되고 의사들의 전문성은 유지될 수 있었다.

 

최근에는 1992년 영국 GMC(General medical Council; professional regulation) 협회장을 맡았던 도널드 어빙(Donald irving)은 의사 존경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 말은 상당히 의미 있는 개혁선언으로 권위를 내려놓을 때 진정한 권위가 주어진다는 뜻이 담겨있다.

20년 전 의사들이 나서서 의사들의 권위의 상징과 같은 넥타이를 벗어 버리겠다는 작은 운동을 시작했다. 의사넥타이를 통해 병원균이 환자에게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개혁운동이었다. 19세기 산모들의 죽음 막기 위해 산전 진찰 전에 소독액으로 손을 씻고 진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멜바이스의 개혁운동과 매우 흡사하다. 의료개혁은 이렇게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들의 작은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역대 의사협회 많은 집행부가 의료개혁을 주장했었던 기억이 있다. 국민을 위한 의사들,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의사들…. 거창한 구호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찾아볼 수가 없다. 외부에서 볼 때 한갓 정치 구호처럼 보일 뿐이다. 아니 솔직히 우리가 봐도 생색내기 구호와 집회들이었다. 부끄럽다.

왜 의료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결과물이 없었을까? 의료개혁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의사들이 먼저 개혁의 주체가 되어 우리의 문제를 파악하고 솔루션을 제시해야만 하는데, 바로 이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드러내는 용기가 없었다. 동료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용기 있게 그렇게 하지 말자 또는 고쳐가자고 먼저 제안하고 주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회원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용기 있게 문제점을 노출 시키지 못했다. 당연히 정확한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고 해결점을 찾으려하니 해결이 될 수 없었다. 전문가의 생명인 자정활동(professional regulation)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사회내의 많은 문제들이 사회문제로 나타났다. 의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법을 만들어 의사들을 다스리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타율에 의한 억지 개혁을 막고, 의사 자율에 의한 의료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먼저 우리들의 문제점을 오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필요하다. 바로 자정실천 로드맵이 필요하다. 2012년 의사협회에서 자정선언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드러내기 쉽지 않은 모습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용기 있는 일이다. 방향도 바로 잡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작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번에 모든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작은 것 하나부터 실천하고 변해가는 의사들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로드맵은 의료개혁을 바라는 국민과 의사동료에게 신뢰와 힘을 얻게 할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자정선언은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쁜 일이다. 환자를 배려하는 작은 실천이 바로 의료개혁운동이다. 이제는 선언의 단계를 지나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줄 단계다. 개혁은 작은 실천과 감동 속에 이루어진다.

이창우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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