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온 친절한 의사가 40년의 결혼 생활 끝에 아내를 도끼로 찍어 죽였다. 아내의 사체를 토막까지 냈다. 그는 고작 3년 형을 언도받았다. 그것도 '자유 공개 형벌'로 치뤘다. 자유 공개 형벌이란 죄수가 잠만 형무소에서 잘 뿐 직업을 가지고 하루 일과를 바깥에서 자유롭게 소화하는 것이다.

(2)부잣집 출신의 아름다운 첼리스트가 남동생을 욕조에 눕히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것은 누가봐도 사랑이었다.

(3)고아출신 한 남자가 은행을 두 번이나 털었다. 그것도 첫 번째 범죄로 구속되고 나서 아직 20개월의 형기가 남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은행을 턴 것이다. 그는 현행범이었고 같은 죄목으로 처벌 받은 경력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단지 2년 형을 언도 받았다. 그리고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판사와 배심원 전원이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했다.

(4)평범한 여자가 불과 두 달 정도 알고지낸 기자를 살해한다. 그녀는 담담하게 죄를 시인한다. 그녀의 얼굴에서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지쳐있고 쉬고 싶을 뿐이다.

위의 네 케이스가 납득이 가는가? 이런 인간 말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가? 판검사는 무엇을 하면서 월급받고 사는 사람인지, 법원은 왜 있는지 궁금해 질 것이다. 앞의 세 케이스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의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갤리온 刊)에서, 마지막 Case는 하인리히 뵐의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민음사 刊)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책을 읽어보면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간과정을 듣고 나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처음과 끝이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진료 현장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독감예방접종을 받으러 온 환자가 목이 칼칼하고 몸이 살짝 으슬으슬하다고 한다. 체온을 재보니 37.4도이다. 컨디션이 좋아진 다음에 접종을 받으라고 권유하자 환자가 펄쩍 뛴다. "아뇨, 저 괜찮아요. 여기까지 오는데 버스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왔어요. 일이 너무 바빠서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몰라요. 맞아도... 괜찮겠죠?"

계란을 먹으면 간간히 두드러기가 나는 초등학생을 데리고 온 보호자가 있다. 혹시 모를 이상반응에 대비가 되어 있는 병원에서 접종하라고 하자 보호자는 화를 낸다. "앞으로 몇 번이나 맞아야 되는데 그 때마다 병원에 가라는 겁니까? 내 딸인데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요. 여기서는 문제 있는데 소아과 가면 아무 문제가 없답니까? 빨리 주사나 놔줘요!"

기침·가래약을 처방해 달라고 온 할아버지가 있다. 호흡음도 심상치 않고, 증상도 오래되었으니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고 큰 이상이 없으면 처방해 드리겠다고 하자 말한다. "이 나이에 병은 찾아서 뭐하겠습니까. 찾는다고 치료할 수도 없을 텐데…. 아니 내가 여기서 몇 년을 약을 먹어도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이제와서 된다 안된다야!"

모두가 기구한 사연이 있다. 한 번 쯤은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10월에 하루 보통 1000명, 많게는 1900명까지 오는 독감예방접종 환자 중에서, 3년동안 매일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중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컨디션이 안 좋은데도 접종을 결정한 무책임한 의사, 계란 알레르기 병력을 듣고서도 흘려버린 눈 뜬 장님, 증상있는 환자를 3년 동안 보면서 감기약만 처방한 허수아비가 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상황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고? 분만과정에서 의사의 잘못이 없다고 인정된다면 국가와 의사가 5:5로 배상하는 나라에서 무슨 정상 참작을 바라겠는가.

어떤 선배는 말씀하셨다. 아무도 너를 지켜 주지 않는다고. 철저하게 방어해야 한다고.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청년의사로서의 자존심과 양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권리와 책임은 항상 함께 다닌다. 진료 현장에서는 그 둘이 함께 있기는 하나 내 권리는 환자의 그것에 비하면 미약하고, 책임만이 오롯이 존재한다. 균형의 파괴는 왜곡된 진료환경을 만들어내고, 결국 의사와 환자 모두를 파괴한다. 진료 현장에서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박 지 훈
보령시보건소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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