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문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방문진료는 거동이 불편한 만성질환 환자를 찾아가서 관리해 주는 것이다. 집에서 환자를 만나면 환자의 생활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제 상황은 어떠신지,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요즘 걱정거리는 무엇인지, 위생 상태는 어떤지. 일단 방바닥에 마주 앉으면 진료실에서 보다 많은 대화를 할 수가 있다. 환자분들은 언제나 우리 진료팀을 반긴다.

환자분들에게 간호사 선생님은 딸 뻘이고, 나는 손자 뻘이다. 거동이 불편해서 밖에도 잘 나가지 못 하셔서 대화 할 상대가 없는 어르신들 중에는 한 달에 한 번 우리가 오는 날만 기다리시는 분도 있다. 방에 불도 안 켜고, 세간 살림도 얼마 없지만 우리에게 줄 음료수를 꼭 준비하셨다가 주시는 분들도 있다.

언덕 꼭대기라서 병원에 가려면 버스타러 가는 데에만 30분이 걸리는 할머니에게 관절염 약을 드리고 올 때는 우리도 뿌듯하다. 환자분들은 매번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연신 감사하다고 말해주신다. 그러나 정신이 바짝 들 때가 있다. 바로 애매한 환자들을 만날 때다.

애매한 환자들이 있다. 거동이 웬만큼 괜찮고, 경제 사정도 괜찮은 것 같은 방문진료 대상자들이 있다. 보건소에서 신중하고 세심하게 대상자를 선별하지만 그래도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제도는 원래 완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하위 계층에게 혜택을 주면 차하위 계층은 불만이 생긴다.

그렇다고 차하위 계층에게 혜택이 가면 최하위 계층에게는 불행한 일이 돼버린다. 우리나라 진료 체계는 모든 계층에게 혜택을 준다. 기본적인 진료비와 약값이 너무 싸다. 그러면서 정작 큰 병에 걸리면 웬만한 가정은 집안이 휘청한다. 모든 계층에게 주는 혜택은 모든 계층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생떽쥐베리의 '야간비행'에는 '리비에르'라는 항공망의 책임자가 나온다. 앙드레 지드는 '리비에르'를 이렇게 설명한다.

“리비에르는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조종사들이 자신의 가치를 믿도록 하고 그들이 가진 최대의 능력을 끌어내며 용맹한 행위를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타인을 행동하게끔 독려한다. 그는 가차없는 결정을 내려 겁이 나 움칫하는 것을 봐주지 않고, 아주 사소한 실수도 처벌한다. 그의 엄격함이 일견 비인간적이고 지나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비에르가 단련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결점이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리비에르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우리는 저자가 진정 탄복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지한다. 특히 나는 내가 심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즉 인간의 행복은 자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리비에르는 결코 냉정한 사람이 아니며 그가 조종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은 조종사들이 이를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 국민은 의료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는 동시에 비용을 지불할 의무도 있다. 그 의무를 받아들인다면 국민은 진료를 받고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의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처방전을 들고 병원문을 나오면서 "의사 얼굴 한 번 보는데 무슨 3000원 씩이나 내?"라고 투덜댈 것이다.

진료비를 올리는 결정을 하는 일은 진료비를 내기로 결정하는 것 이상으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모든 계층에 대한 혜택이 조금 줄고, 정말 필요한 사람에 대한 혜택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꼭 필요하여 혜택을 받은 방문진료 대상자가 내 손을 잡으며 감사하다고 말할 때 내 손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박 지 훈
충남 보령시 보건소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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