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는 결국 '수술거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슈화에 성공했고 포괄수가제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렸으나, 정부는 결국 포괄수가제를 불도저처럼 강행하고 있다. 당장 7월부터 시행된 포괄수가제. 설사 이번에 어떻게 넘어갔다 했더라도 의료비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증가하는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필연적이다

포괄수가제가 타고 있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렇다면 포괄수가제에 의사로써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의료는 이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와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로 나뉘었다. 필자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는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세 가지 층위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의사가 이것도 안하면 돌팔이라고 생각할만한 최소한의 의료, 대부분의 의사가 지나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과잉의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애매한 의료가 있을 것이다.

포괄수가제가 지향하는 바는 위에서 얘기한 '최소한의 의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포괄수가제는 명백히 증가하는 의료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경제적인 관점이 들어간 제도다. 대체로 의학적인 효과가 높아질수록 의료의 가격도 올라간다. 포괄수가제 하에서는 ‘서비스 패키지’에 가격을 같게 매기니 의료 공급자 입장에서 ‘서비스 패키지’을 어떻게 비용 대비 효과적으로 구성하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의료' 이하로 의료를 제공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고, 국민의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커다란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하로 가격 인하노력을 하는 것은 안 된다. 포괄수가제에서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바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소한의 의료의 한계선을 정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바로 포괄수가제를 대비하는 의료인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고민해 보아야 하며-의료계 전체적으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한다.

소위 말해 '진료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의사는 자신의 진료가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한계선을 명확하게 설정해 줌으로써 의사 자신과 환자들을 최소한의 의료 이하의 나락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또한 과잉 진료로부터도 스스로 경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도 원하고, 환자도 원하고, 의사도 원하는 시대적인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위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중 하나가 결국 '비용대비 효과'개념을 어떻게 얼마나 가이드라인에 적용할 것인가이다. 의학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그런데 가장 최신이고 또한 가장 효과적인 경우가 많은 기술이 비싼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나날이 환자들이 증가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효과만 따지고 환자를 치료하면 그 비용을 대는 사회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용대비 효과가 좋지 않은 기술은 건강보험으로 커버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그 '비용대비 효과'를 따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의사의 과제라는 사실이다. 의사라고 의학적 효과만 따질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의 한국의사가 맞닥뜨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넘어선 도전이다.

박 제 선
조천보건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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