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예인들이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TV드라마 작업현장에 대해 성토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 이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배우 최민수의 말이 짠하다.

작년에는 한 유명 여배우가 드라마 촬영여건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촬영을 중단하고 현장을 일시적으로 떠난 적이 있었다. 여론은 그 여배우에게 가혹하리만큼 심한 뭇매를 가했다. 선배들도 참아내면서 하는데 젊은 배우가 할 행동은 아니라며 질책하기에 바빴다.

A급 배우들은 회당 수천 만원을 상회하는 출연료를 받는다는 한국 드라마는 왜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급기야 밤을 새며 촬영하는 배우들의 작업환경개선을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하루 최대 촬영시간을 18시간까지로 제한하는 안(案)을 제시했단다.

'퐁당퐁당 퐁당당'. 무슨 노랫말소리인가 싶지만 전공의들에게는 낯익은 단어다. '퐁'은 휴식을, '당'은 당직을 뜻한다. 즉, '퐁당퐁당'이라고 하면 하루는 휴식을, 다음날은 당직을 서는 근무형태를 말한다. '퐁당퐁당 퐁당당'이면 1주일에 근무시간이 무려 100시간에 육박한다. 물론 '퐁'을 퐁처럼 쓰게 해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퐁'은 말 그대로의 휴식이 아니라 'NOT 당'일 뿐이다. 즉, 당직을 서는 동안 할 수 없었던 환자차트정리 및 발표준비와 학회준비 등 온갖 잔업을 수행하는 시간인 것이다(문득 예전에 은행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은행은 왜 퇴근을 밤 11시에 하느냐’고 물었다가 한숨소리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다. 이게 다가 아니지. 의사로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의 습득과 전공의 수료를 위한 논문은 또 언제 쓴다는 것인지.

우리와 달리 미국전공의교육위원회(ACGME)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구체적인 '퐁'과 '당'의 개념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즉, 각종 학회 및 회의도 근무시간에 포함되며(Duty hours comprise all clinical duty time and conferences), 24시간 당직을 서면 적어도 14시간 이상의 휴식을 제공해야한다(They must have at least 14 hours free of duty after 24 hours of in-house duty).

특이한 점은 인턴의 근무시간이 주당 60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업무가 손에 익지 않은 인턴의 경우 환자를 돌봄에 있어 행여 실수의 가능성이 적지 않기에 환자보호차원에서 일종의 안전장치를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인턴이나 전공의를 새롭게 시작하는 2월에는 일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오히려 휴가를 주지 않고 연이어 당직을 서는 관습이 있는데, 의학교재에서부터 'JCI인증'까지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전공의 처우에 대해서는 정반대인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쉬지도 못하고 쉴수도 없었던 전공의 생활이 어쩌면 의사들에게는 가슴 속 트라우마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과정을 힘들어하고 중도에 하차하는 의사들이 안타까워 보이기보다는 그저 나약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철없는 인간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해'라는 비논리적인 강요, '너희들이 고쳐야지, 우리가 어떻게 하겠니?'라는 암묵적인 위안, '다 그런 거야'라는 이기적인 감상으로 일관해 온 것은 아닐까. 의사들도 이제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하지만 출생과 더불어 엄마의 심장으로부터 느꼈던 '기본적 신뢰'를 회복하자. 무너진 신뢰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배신감과 그 바탕에 깔려있던 피해의식을 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앙갚음의 응어리를 과감히 털어버리자. 포괄수가제 도입, 응급의료법 개정 등 그 어느 때보다 의료계의 한 목소리가 절실한 요즘이다. 

 

김 기 현
강진군보건소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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