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사로 보건소에서 근무하면 지역사회의 일차 의료를 담당하게 된다. 짧은 기간 근무했지만 1차 의료는 대학병원에서 하는 3차 의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학병원에서는 다양한 환자를 만나게 된다. 좋은 말로 하면 ‘다양한’이고 나쁜 말로 하면 ‘말기, 치료가 힘든’ 환자들이다.

대학병원에 있는 말기 암, 뇌졸중, 급성 심근경색, 급격히 악화된 SLE, 만성 신부전, 폐렴 환자들은 언제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 의사가 항시 대기해야 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언제나 의사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 보건소는 다르다. 만나는 환자군이 정해져 있다. 고혈압, 당뇨, 관절염 이 세 가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감기만 하나 추가된다. 보건소에서는 만성질환 환자에게 약을 30일, 60일씩 처방한다. 이렇게 처방을 하는 동안 느낀 것이 있다. 환자들에게는 약을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약을 잘 먹지 않는다. 왜 약을 안 먹었냐고 물어보면 사소하지만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이유가 어떻든 결국은 먹지 못한 것이다. 환자가 약을 먹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환자의 책임이 아니다. 내 환자이기 때문에 내 책임이 49%는 된다고 생각한다.

훈련소에서 소대장이 전문의 훈련병과 했다던 대화가 있다. 소대장이 몸이 안 좋은 곳이 있어서 전문의 훈련병에게 물어봤더니 전문의 훈련병이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되는 병이라고 했다. 소대장은 이 증상은 생긴지 조금 되었지만, 지금 잘 걸어다니고, 몸져 누울 만큼 불편한 것도 아닌데 굳이 수술까지 받아야 되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전문의 훈련병이 말했다.

“소대장님이 우리 삼촌이었으면 지금 당장 제가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을 겁니다.” 소대장은 이 말을 듣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다.

공중보건의사도 환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약을 처방만 하고, 약을 뿌리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

의사가 처방만 하고 나몰라라 한다면, 환자가 약을 깜빡했을 때 약 한 알과 물 한잔을 건네는 옆집 아저씨만큼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주지시키고,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의사를 찾아오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가정 형편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아픈 곳을 한 번 만져주고, 손을 한 번 잡아주어야 한다. 그런 일차의료인들이 많아진다면 지역 보건의 서류상에서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좋아지지 않을까.

내 진료 점수를 매긴다면 현재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3년을 지역 보건에 이바지 하고 싶은 신규 공중보건의사로서 이런 다짐을 하고 시작하고 싶다.

박지훈
충남보령시 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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