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개월 전의 일이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한 어른이 들어섰다.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이곳 시골 보건지소에서는 1년이 가도 보기 어려운 초진 환자였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죠”라는 나의 말은 들은체 만체 하더니 주머니에서 안약 2개를 불쑥 꺼낸다. 그러면서 건네는 말씀이 “내가 작년에 눈에 염증이 있어서 받은 약인데, 이거 좀 처방해 줘”라고 다짜고짜 처방을 요구한다.

사실 안과진료는 보건지소에서 전혀 손을 델 수가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환자분은 막무가내였고, 난 정중하게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나가면 있는 읍 지역 안과를 방문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 환자분은 10여분을 대기실에 앉아 온갖 욕설을 하다가 나가셨다.

며칠 후 군청 비서실에서 “왜 진료를 거부 하냐”고 전화가 왔다. 군수실로 민원이 들어와 군수가 노발대발했다는 것이었다. 본인은 검사장비의 부재와 진료과목의 특성상 전문의가 아니라면 접근하기 어려운 안과의 영역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지만, 얼마 후 지역 보건소에 진료거부 금지에 관해 군수의 명령이 내려왔다고 한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끝나고 필자의 근무지역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신임 군수의 열정적인 의욕과 등쌀에 이하 행정공무원들을 포함하여 보건공무원, 공중보건의사 등은 전에 없던 업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필자와 주변 동료들에게 중요한 건 신임군수가 공중보건의사의 복무태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직접 명령한다는 것이다.

비단 이 한가지 일 만이 아니다. 유행성 각결막염에 걸린 한 보건지소 선생님이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유행성 각결막염의 사유로 해당 보건소에 2주간의 병가를 요청했으나, 3일 만에 민원이 쇄도하여 군수가 직접 복무 복귀를 요구했다.

지소 의사선생님은 연가라도 사용하여 자신을 격리하길 원했으나 지역 내 공중보건의사의 위치 상 어쩔 수 없이 복무 복귀를 하고 위험 천만한 진료를 해야만 했다. 간단한 신체 접촉만으로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을 가진 의사가 진료 자체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이다.

사실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의사의 진료권한에 대한 책임은 의사 본인에게 있지만, 이 진료에 대한 실제적인 명령권이 의사도 아닌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위임되어 있다는 일이다. 더구나 지자체장은 진료에 관해 명령을 하더라도 이에 대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중보건의사가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복무 태도에 관한 문제는 지자체장이 관여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진료에 관한 명령권은 지역 보건소, 혹은 보건복지부가 직접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연간 예방접종 2만 건을 진료하는 보건소에서 추가적인 예방접종 담당의사의 고용 없이 1~2명의 공중보건의사에게 모든 일을 떠맏겨 놓곤, 이에 대해 발생한 접종 합병증으로 영유아가 사망한 건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는 지자체의 전혀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는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김문택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정책고문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