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길 이전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서야 했다. 양평으로 진입하는 6번국도 그리고 홍천으로 들어가는 44번 국도에서 구제역 전파 예방을 위한 차량소독을 실시하여 차량이 조금씩 지체되기 때문이다.

라디오 뉴스에서 14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고, 200만 마리의 소·돼지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로 인해 축산업 기반자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또한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받는 일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는 상상 그 이상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한 수의사선생님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구제역 전파 예방을 위해 집에 한 달 넘게 가지 못한 채 일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생명을 앗아가는 일에 지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동료 수의사·공무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경기도에 소속된 수의사분들이 80여분정도 되는 데 이중 많은 수의 수의사분들이 고된 업무와 살생에 지쳐 퇴직하거나 휴직을 신청했다고 한다. 자신도 너무 힘이 들지만 사람하나가 빠져나가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다른 사람이 더 힘들어져 참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의 마지막 말은 간곡하게 부탁으로 대신했다. “제대로 된 방역시스템을 갖추고 부족한 수의사를 충원하여 올바른 진료나 예방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런 간절함은 낯설지가 않았다. 작년 신종플루는 세계를 강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최대 2만 명의 사망자를 예측하기도 했다. 물론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우려했던 만큼 큰 피해는 발행하지 않았다. 지금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구제역 사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정부가 잘 대처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고 그 중심에 신종플루 치료와 예방의 최전방에서 노력한 공중보건의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학생들과 노인층에게 실시했던 예방접종은 대부분 전국에 있는 공중보건의사들이 담당했다. 애초에 계획은 정부가 예진을 담당할 의사를 두 달간 고용할 예산 800만원을 지자체에 지원하여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이었지만 비현실적인 비용책정과 그나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실제로 의사를 고용한 지자체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지 않은 지역은 타 지역에서 공중보건의사를 수급받기도 했다. 숙박이나 급여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돌려막기 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환자발생에 대처하기 위해 주말에도 근무했고, 겨울내내 관내 전 지역을 순회하며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학생과 노인층 접종을 전담하다보니 공중보건의사 한명이 적어도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을 담당했다. 구제역에서 수의사가 없으면 방역대책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든 대책의 중심에서 일해야 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의 목소리가 실제 계획에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 의료에 관해 의사에 부족한 지식을 가진 공무원들이 기획하다보니 위험한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예방접종의 위험성을 간과하여 적절한 대처 없이 무작정 접종 실시를 요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공중보건의사들 덕택에 예방접종은 무사히 끝났고, 집단면역 형성에 성공해 우리나라는 큰 피해 없이 신종플루 유행을 이겨냈다.

지금 구제역 사태 중심에 선 수의사들과 작년 신종플루 유행 현장에서 일했던 공중보건의사들이 내는 목소리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관련 대책을 작성하는 단계에서부터 해당 전문가가 중심이 되어 기획하여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하고 충분한 인원을 적절한 대우를 통해 확보하여 안전하고 정확한 대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늘 사건이 발생하면 주먹구구식의 대처와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방법으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정부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안정호

강원도 홍천군

남면보건지소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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