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고려의대 내과 교수
의약평론가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구호는 잘못된 아이콘이다. 어느 나라에도 이러한 아이콘은 사용하지 않는다. 의약분업의 모토였던 이 아이콘은 당시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래서 잘못된 아이콘으로 시작한 의약분업을 지금 와서 다시 평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10년 전 의약분업은 약제비 절감을 통한 보험재정의 안정화를 목표로 실시된 것이다. 당시 서울대 김용익 교수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칼럼에도 그 점을 명확히 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정부가 언론과 국민을 설득하기 위하여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아이콘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의약분업의 본질과는 관계도 없는 항생제 오남용의 문제를 부풀렸다. 의약분업 이후 항생제 처방이 일시 감소한 것은 병원 항생제 관리팀의 노력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항생제 관리 프로그램 덕분이다. 의약분업의 성과로 내세우는 처방약품 수 4.18개가 3.96개로 줄어든 것 또한 처방이 공개되어서라기보다는 환자들의 의식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의약분업에 대해 국민의 87.5%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의약분업의 원래 목표였던 약제비가 1조 2675억 원에서 2009년 10조 7071억 급증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는 의약분업 전에 이미 예견되었다. 그리고 항생제나 주사제는 의약분업이 아니라도 지속적인 관리를 통하여 줄일 수 있는 것이었고, 오남용이라는 것 또한 객관적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현재의 의약분업은 원래의 정책 목표에서 실패하였다.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였던 약제비 절감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부수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는 항생제나 주사제의 사용 감소와 처방약의 감소 또한 미미하여 의약분업의 효과라고 하기도 어렵다. 처방내용이 공개되고 약에 대한 이윤이 없어지게 되면 고가의 오리지널 약을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애써 외면하고 밀어붙인 의약분업은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으로 실패한 정책인 셈이다.

문제는 그러한 정책실패의 결과를 정부가 의사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약제비 증가에 대한 의료계의 경고와 부분 의약분업과 같은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한 의료계를 오히려 의약분업 실패의 책임자로 매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쌍벌제법안 역시 원인을 따지면 실패한 의약분업으로 생긴 약제비 증가를 리베이트로 인하여 약제비가 증가한 것 같이 사실을 왜곡한 결과인 셈이다.
저수가 저급여라는 지금의 의료보험구조 하에서는 어떠한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약제비 증가 역시 의료 수요의 증가와 질병구조의 변화로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놔둔 채로 의약분업이나 쌍벌제 법안 등과 같은 방법으로는 보험 재정의 안정화를 이룰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의료보험 실시 이후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의사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보험안정화를 유지한 것이 정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정급여, 적정수가와 환자의 의료 선택권 확대,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같은 정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이를 외면할 것인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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