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홍

대한약사회 부회장

대한약사회는 올해 7월부터 전국 50여 곳에서 심야응급약국을 지정·운영할 방침임을 밝힌바 있다. 그간 한편으로 의약품 오남용의 위험을 우려하면서도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원하는 국민들의 비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에는 심야시간대 문을 연 약국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배경이 있었다. 때문에 대한약사회 주도의 심야응급약국 운영 계획은 국민들의 심야시간대 약국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 환영받을 만한 조치일 것이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약국환경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겪었다. 약국경영에서 처방수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고 있으며, 그 비율 또한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니 자연스레 약국 개문시간도 처방전을 발행하는 병·의원 운영 시간대와 거의 비슷해져 가는 상황이다. 더욱이 일반약의 비중이 떨어지고 있고 그나마 응급상황에 쓸 만한 일반약 자체가 점차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수요의 절대량이 극히 낮은 심야시간대에 약국을 운영한다는 것은 경제학적 관점으로만 보자면 이해하기 힘든 넌센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불편함이 엄연히 상존하는 만큼 대안 없이 마냥 국민들에게 불편을 오롯이 감수하라고 할 수만도 없는 문제다. 약사직능은 국민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국민들의 불편을 최대한 해소하는 방향으로 일을 풀어가는 것이 순리다. 국민들이 심야시간대에 약국을 이용하기 불편하다면 앞서 언급했던 불리한 여건들을 일부 감수하고서라도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사실 심야에 약국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약사 개인의 생활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여가시간이 가지는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가 발전해가면서 개인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얼마나 가질 수 있느냐가 삶의 질을 판단하는 척도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을 정도이니 심야시간대 근무가 주는 부담의 크기를 짐작해 볼만 하다. 과거와는 달리 통상적으로 일주일에 5일간 하루 8시간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보통 직장인의 삶이 오히려 약사보다 여러 면에서 낫다는 것은 약국에 종사하는 약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약사직능 전체는 심야시간대 약국 운영이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불편을 외면하고 자신의 처지만을 앞세워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재 여러 가지 여건상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보건의료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약사직능 스스로가 내려놓는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어떤 전문가집단이든 국민들의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존재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어렵더라도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약사직능은 그 길속에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앞에서 언급된 바를 해결하고자 대한약사회는 전국 50여 곳의 심야응급약국을 운영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심야약국의 성공적 정착과 확대를 위해선 몇 가지 필수적 조건이 동시에 마련되어야만 한다. 쉽게 생각해볼 수 있듯 약국경영상의 어려움, 나홀로 약국이 범죄에 노출될 우려 등 갖가지 예측 가능한 어려움을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필수적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일선 약국의 무조건적 희생에 기초한 반강제적 참여가 아닌 자발적 참여의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다. 여기서 정부와 대한약사회의 역할이 중요성을 가진다. 국민편의를 도모하고 약국의 어려움을 감해줄 책임이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와 약사를 대표하는 대한약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약사직능은 국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바탕에서 미래 약국의 역할과 위상확보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우리 일선 약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심야응급약국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조성이 기초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부와 대한약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심야응급약국 지원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도 늦은 밤까지 전국 곳곳에서 많은 약국들이 사랑과 봉사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이 불빛은 주민들, 더 나아가 국민 모두의 건강을 염원하는 약사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불빛임을 우리 국민 모두가 가슴으로 느끼게 될 날이 곧 올 것으로 확신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