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교수의 원 포인트 JCI - 4

인증을 위한 컨설팅을 받을 때 곤혹스러웠던 것 가운데 문화적 차이로 모든 사안들을 우리식으로 생각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병원 내 화재 발생 시의 대처 요령에 대해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항목 때문에 온 직원들에게 내용을 정리해서 암기하게 한 적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병원 평가 시기의 모습에서도 나타나는데 초기 병원 평가 때에는 직원 아무나 붙잡고 환자의 권리장전을 외워보라고 했던 것들이 그런 것이다.

사실 권리장전을 외우고 화재 시 대피요령을 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아무튼 우리식은 그런 것이다. 문제는 직원이 한 둘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실사의 특성 상 복도를 지나가다 만나는 직원이면 누구나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난감했었다. 컨설팅 시점에서 이 점이 어렵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눈에 띄는 곳곳마다 화재 시 대피 요령을 적어서 붙여 놓으면 되는 것을 왜 외워야 한다고 생각 하느냐’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렇지. 화재 시 안전하게 대피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외울 필요는 없는 일인데 왜 나는 그것을 외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경직된 우리의 사고와 달리 합리적인 미국 사고에 민망했었다.

여기에 착안해서는 각종 시설물에 대한 사용 방법들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시설물들 주변에 죄다 붙였다. 준비하다 보니 병원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복잡한 시설들이 어찌나 많은지. 복도마다 있는 밸브며 차단기며, 이 모든 것들의 용도와 사용 방법을 숙지해야 하는데 암기해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병원에 와 보면 곳곳에 시설물의 사용 요령이 적힌 안내문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보여주는 것에 급급한 우리와 달리 여건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안전하게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화재가 났을 때 아무려면 대피 요령을 외워서 하는 것과 눈에 보이는 부위에 대피 요령을 적어 놓고 그대로 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지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인데 말이다.

또 이런 것도 있었다. 의무기록은 컴퓨터로 입력하고 보관은 출력해서 하는데 출력된 의무기록지에 개개의 의사들의 서명이 완전하지 않아서 고민을 하고 이 점을 보완하겠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개인 아이디가 있고 비밀번호를 통해서 로그인 했는데 왜 또 서명을 하느냐’는 것이다.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남이 아느냐는 것이다. 아 또 한방 먹었네.

대개 우리는 외래 간호사들이 staff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미리 열어 놓는데 그 습관이 그만 이런 착오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나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잘 지켰다면 그렇게 기록된 출력물에 서명을 해야 할 이유를 고민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 이름으로 기록된 출력물에 내가 또 서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식의 사고로 JCI 인증을 준비하다 보니 결국 이런 오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 고대안암병원 QI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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