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요즘은 ‘나’보다 ‘내 주변’이 문제가 되는 시대다. 연예계든, 정치든 당사자의 능력이나 행보보다 가족이나 지인의 과거까지 소환돼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가수 신지 씨의 결혼 소식만 봐도 그렇다. 25년간 그룹 코요태로 활동하며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신지 씨의 결혼은 축하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화제의 중심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예비 배우자의 과거 발언과 이력까지 파헤쳐지며 ‘공직자 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신지 씨는 결국 “선을 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해야 했다.
이같이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신상털이와 마녀사냥은 정치권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지난 18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인사청문회가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정책 철학이나 위기 대응 능력이 아닌, 배우자의 주식 보유 문제로 집중됐다. 의혹 제기의 수준을 넘어 마치 후보자 본인이 아닌 가족의 투자 이력이 임명 자격을 결정하는 핵심인 것처럼 몰아갔다.
우스갯소리로, 이날 청문회는 마치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검증하는 자리로 착각할 만했다.
물론 공직자는 엄정한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가족의 행위가 명백한 위법이나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면 당연히 검증돼야 함이 분명하다. 다만 공직자의 자격을 논하면서 정작 당사자의 전문성과 행정력이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의료정상화라는 국가적 위기를 수습할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하는 시기다. 의과대학 교육과 전공의 수련 정상화, 지역의료 확충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복지부장관 인선이 길어질수록 정부의 의료정책 추진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절박한 시점에 후보자의 능력과 철학보다 주변 인물의 재산 내역에 집중해 검증의 본질을 잃는다면 단순한 여야간 힘겨루기라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22년 정호영 전 복지부 장관 후보자 또한 의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문성을 두고 기대감이 높았으나 자녀 의대 편입 특혜, 군 특혜 논란 등 가족 관련 의혹이 집중 제기되며 결국 자진 사퇴했다.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으나 ‘의혹 자체’가 임명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정책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검증할 기회가 ‘마녀사냥식 청문회’로 변질된다면, 누가 공직에 나서려 하겠는가. 이는 결국 정치와 사회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위기 상황에서 유능한 인재를 등 돌리게 만드는 구조적 악순환이다.
前 정부부터 1년 반 동안 이어진 현 의정사태는 무리한 의대증원 추진에 따른 단순한 의정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의학교육과 더불어 의료시스템의 뿌리를 흔들어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이제 막 전공의와 의대생이 복귀를 선언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의학교육과 수련 정상화의 첫발을 내딛은 시점에서야말로, 복지부장관은 단순한 ‘정치적 소모품’이 아닌 ‘위기관리의 실력자’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장을 지휘할 사령탑의 리더십보다, 배우자의 주식 내역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복지부장관 청문회는 결국 스스로 국가 시스템의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다. 정작 ‘누가 국민을 살릴 수 있는가’는 없고, ‘누가 옆에서 돈을 벌었는가’를 문제 삼는 검증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