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정광성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빠르게 국가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떠나간 전공의들, 멈춰 선 수술실,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국민적 불안감. 이 모든 붕괴의 진원지는 지난 정권이 쇠심줄처럼 고집했던 ‘불통(不通)’이었다.
돌이켜보면 과정은 단순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했고, 과학적 근거 대신 비과학적인 확신을 앞세웠으며, 반대편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척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정책은 일방통행이었고, 소통은 실종됐다.
그 결과,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K-의료의 근간인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 사이의 ‘신뢰’가 산산조각났다.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정부의 제안은 그 진위를 따지기도 전에 ‘또 거짓말이겠지’ 하는 냉소부터 마주하게 됐다.
이처럼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폐허 위에서는 그 어떤 정책 설계도도 소용없다.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 일이다. 이 과업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리더십, 바로 ‘소통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다.
‘소통 전문가’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달변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첫 번째 덕목은 ‘경청’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 특히 현장의 뼈아픈 절규를 인내심을 갖고 듣는 능력이다.
두 번째는 갈등의 골을 메우는 ‘중재’ 능력이다. 양측을 한 테이블에 마주 앉게 하고,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의료계와 국민의 불안에 공감하고 정부의 진심을 전달하는 ‘신뢰의 번역가’여야 한다.
그리고 그는 취임 즉시 망가진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지난 정부의 과오로 상처받은 의료계에 손을 내밀고, 불안에 떠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진심이 오가는 대화의 장을 여는 것이 대한민국 보건의료 재건의 첫 삽이다.
지난 과오가 증명하듯, 불통의 리더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정교해야 할 정책을 독선으로 만들고, 결국 시스템 전체를 파괴한다. 보건복지 인선은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아야 한다.
정책적 전문성은 기본이거니와, 그 전문성을 신뢰로 연결할 수 있는 소통의 대가를 찾아야 할 때다. 이 붕괴를 멈추고 재건을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