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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책 입안 정부, 제약에 '자료로 설득해봐라'

기자수첩:주체 뒤바뀐 '입증책임'

2011. 10. 17 by 김영주 기자

제약계가 일괄약가 인하로 인해 자신들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해 임채민 복지부 장관을 설득하기 위한 회계자료 작성에 바쁘다. 심지어 휴일도 반납한 채 제약협회에 모여 머리를 맛대고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임 장관을 비롯, 해당 부서 간부들은 공공연히 '제약업체들이 일괄약가인하에 대해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으면서 엄살부린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며, '진짜 어렵다면 세무조사를 받아도 떳떳할 정도의 투명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들을 설득해 보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제약계는 기업비밀 자료가 일부분 드러나더라도 정부의 구미를 맞춘다는 각오이나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을 뿐더라 자칫 지나치게 부정적 전망으로 기업가치에 영향을 줘 주주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 등으로 계수 제시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드는 의문 몇 가지. 자신들 스스로 전체 시장의 17%쯤 된다는 2조1000억원의 가격인하를, 그것도 5개월후쯤인 내년 3월에 한꺼번에 시행하겠다고 하면서 정말 그 충격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약업체들이 구체적 계수를 제시해야지만 그들의 어려움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정책의 합리성·정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 등이다.

실제 정부는 불과 얼마전 기등재목록정비 사업을 추진하며 제약계에 전체 8000억 정도의 피해가 가는 것으로 추정되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3개년에 걸쳐 시행토록 배려했다.

따라서 2조10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이번 정책을 내년 3월 단숨에 해치우겠다는 것은 누가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과연 여타 산업에서 이런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제약사들이 어렵다는데 엄살쯤으로 치부하며 납득할만한 자료를 통해 진정성을 확인시켜 달라고 한다는 점이다.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이번 약가인하의 문제점에 대해 질타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평소 보수적인 데다 정부 알기를 하늘 같이 아는 제약계가 CEO 피켓시위를 비롯, 생산중지, 궐기대회 등 장외집회까지 결의한 것이 엄살을 눈치 채지 않게 하기 위한 술책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더더욱 납득이 어려운 것은 한 순간에 큰 충격을 주는 이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당연히 정책 입안자가 피해 당사자(제약)들을 설득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하다 싶으면 짐을 덜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피해자에게 그 어려움에 대해 자신들을 설득하라는 앞뒤가 바뀐 요구를 너무도 당당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제약업체의 한 관계자는 "복지부는 제약업계 입장에서 보면 '슈퍼 갑'이다. 물론 제약업체들은 '슈퍼 을' 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잘못은 제약업체들에게 있고, 제약업체들이 머리 조아리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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