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보건의료 육성전략 과제

출산은 개인 ‘책임’ 아닌 누려야 할 ‘권리’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인터넷에서 ‘출산율’을 검색하면 ‘10년간 100조원을 쏟아 부었는데 출산율은 계속 뒷걸음’ ‘울음소리 사라진 한국, OECD 국가 중 출산율 최하위’ ‘2016년 합계출산율 1.17명, 지난 10년 최저기록’ 등 줄줄이 비관적이다.

이는 2006년부터 추진해 온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실망과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연간 출생아 수는 100만 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2년에 40만 명대로 떨어져, 급기야 2017년에는 30만 명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세대 만에 출생아 수가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이다.

이와 같이 저출산이 지속되면 노동력 감소와 노동생산성 저하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우리나라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지방소멸론’까지 제시한다.

◇저출산, 국정 3대 과제 선정=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국정 3대 과제로 선정하여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27%로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넘어섰다. 결혼 당사자인 젊은 세대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바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혼밥(혼자 밥먹기)과 혼여(혼자 여행가기)와 같은 혼자 사는 삶을 택하고 있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은 경력단절과 육아가 부담스러워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저출산 정책은 ‘겁주기 방식’이었던 것 같다. 경제파탄, 국가멸망 등 저출산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나열한 뒤 저출산 극복을 위해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보완대책으로 오는 2020년까지 출산율 1.5명 목표달성을 위해 최소 2만명 이상 추가 출생이 필요하다는 ‘출생아 2만명+α 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방식에 일부 여성들은 출산을 강요당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애 낳는 기계냐?”라는 반발과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한다.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부담으로 인식한다. 사회가 자녀 양육을 보장하지 못하고, 가족의 행복을 유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임신도 하기 전에 육아 문제로 한숨을 푹푹 내쉬는 김지영의 모습이 나온다.

“무엇보다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부부 모두 퇴근이 늦는데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양가 부모님도 아이를 돌봐 주실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남에게 맡길 방법부터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미안하기만 할 아이를, 키우지도 못할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고 있을까” 현실에서도 소설 속 김지영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결혼-출산-일 양립 어려워= 100여 가지가 넘는 저출산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결혼과 출산,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협회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이 저출산 문제를 체감하지만 해결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 간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2015년 전국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44세 이하 미혼 남성의 이상 자녀수는 1.96명, 미혼여성은 1.98명이다. 합계출산율이 1.3명에 못 미치는 초저출산율이 1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이상 자녀수는 2명에 가까운 높은 수치이다. 자녀는 갖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산 친화적 환경 조성해야= 젊은 세대는 국가보다는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가 위기를 내세워 출산을 강조하면 젊은층은 거부감을 가진다. ‘합계출산율 상승’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나 개인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출산 친화적 환경 조성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도 저출산 대책의 기본 방향을 ‘저출산 극복’에서 ‘가족 행복’으로 전환한다고 하니 늦었지만 잘 한 일이다.

핀란드에서는 유모차를 갖고 버스를 타면 교통비가 무료라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한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손에는 유모차를 끄는 남자를 ‘라떼파파’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육아하는 남성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프랑스는 미혼모·한부모·입양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정부 지원 또한 차별 없이 동등하다. 출산과 양육을 배려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가족 모두가 존중받는 문화가 정착되고 사회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나를 닮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출산은 개인에게 ‘책임’이 아닌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것이다. 결혼과 출산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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