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은 대부분 노화로 인한 골관절염으로 관절, 뼈마디마다 안 아픈 곳이 없다. 면역력이 약하고 영양섭취도 제대로 되지 않아 감기도 잘 걸리고, 소화불량도 자주 경험하신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그나이 되도록 밭일을 해야만하고, 아직도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손발이 트고, 손가락에 상처를 달고 사신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외로움 때문인지 밤에 불면증으로 괴로워 수면제를 달라고 하시는 할머니들도 많다. 하지만 공중보건의로서 해드릴 수 있는 진료는 감기약, 소화제, 대일밴드, 후시딘, 진통제가 전부다. 할머니들은 고맙다고 하시지만, 더 이상 해드릴게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시면, 이제 죽을 일만 남았는데 괜찮다고 하신다. 오히려 통증과 외로움, 고단함 때문에 빨리 죽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할머니들의 인생은 지금 우리의 인생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오신것 같다. 어린나이의 결혼, 일제시대, 6.25전쟁, 피난생활, 경제적 빈곤, 자식들의 출가 후 외로움, 관절염으로 인한 끊임없는 통증, 우울감, 불면증등이 할머니들의 인생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을 것 같다. 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을 유지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초연한 듯 바라보는 할머니들에게 존경과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들게 된다.
조그마한 일에도 불평과 불만을 하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 비교되어 너무나 부끄러울 뿐이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노화가 진행되면 아프고, 외로워 질 것이다. 통증과 죽음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 견뎌내고 감당해야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이 힘들지라도 섬에 계시는 할머니들처럼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주고, 얼굴을 보면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길을 기도해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년 있으면 공중보건의 복무기간이 끝나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할머니들이 인생의 스승으로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남은 복무기간동안 만나는 할머니마다 남은 여생의 평안을 진심으로 기도해드려야겠다.
/ 엄재두 (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