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발효 끝난 후 알코올 첨가한 강화 와인
발효 과정서 ‘플로르’ 효모가 세리 종류 결정

와인과 맥주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술들이다. 그러나 와인은 맥주에 비해 그 종류가 많고 일반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느낌까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인 중에 애주가들에게 조차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종류로 ‘강화와인’(fortified wine)이라는 것이 있다.

강화와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알코올 농도를 인위적으로 강화시킨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와인들은 보통 10~15% 정도의 알코올 농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효모의 작용으로 포도당에서 알코올이 만들어질 때 이 이상의 농도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효모가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다 어떤 방법이던 높은 도수의 술을 섞어 주게 되면 알코올 농도 17~24%의 강화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강화와인은 술을 보다 안전하게 저장할 목적으로 출발한 것이지만 점점 그 특이한 맛의 매력에 이끌려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독립된 종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강화와인에 사용되는 알코올은 주로 브랜디를 사용하는데, 이를 첨가하는 시점에 따라 크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종류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뮈타지(mutage)란 것으로 이는 발효전의 신선한 포도 과즙에 알코올을 첨가한 형태다. 따라서 이후 발효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형태의 강화와인은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데, 뱅 드 리꿰르(vins de liqueurs)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조기 강화와인(early fortification)이다. 이 형태는 일단 발효가 시작되고 나서 적절한 때에 알코올을 첨가한 와인을 말한다. 이때 알코올을 첨가하는 정확한 시점에 따라 강화와인의 특성이 결정된다.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강화와인인 포트(Port, Porto)와 프랑스의 뱅 두 나뛰렐(vins doux naturels, VDN)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포트의 경우 보통 발효 후 알코올 농도가 6~8%가 되었을 때 그리고 뱅 두 나뛰렐의 경우 5~10% 사이에서 브랜디를 첨가한다. 뱅 두 나뛰렐에는 Muscat 포도를 사용하는 뮈스까 봄 드 브니스(Muscat de Beaumes-de-Venise)와 Grenache 포도를 사용하는 라스또(Rasteau)가 있다.

마지막으로 만기 강화와인(late fortification)이 있다. 이 형태는 발효가 완전히 끝난 후 알코올을 첨가하는 형태로, 유명한 스페인의 세리가 바로 이 종류의 대표 제품이 된다.
세리는 스페인의 남쪽 지중해변에 있는 헤레스(Jerez)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 강화와인으로 1996년부터 법적으로 그 원산지 명칭에 관한 보호를 받고 있다. 세리라는 용어는 예나 지금이나 세리의 최대 소비국인 영국에서 이 술을 부르는 이름이다.

스페인에서는 헤레스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세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헤레스 지역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Jerez de la Frontera, el Purerto de Santa Maria, Sanlucar de Barrameda의 마치 삼각형과도 같은 3개의 소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세리의 맛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헤레스 지역 특유의 토양과 기후 때문에 세리의 생산에 최적인 포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세리는 샴페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샴페인이나 세리 모두 그 재료가 되는 지역 포도로 일반 와인을 만들면 제대로 된 와인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이를 가지고 세리나 샴페인을 만들게 되면 최상의 제품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세리는 발효로 당분이 완전히 알코올로 변한 뒤에 브랜디를 첨가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드라이 타입이 된다. 단 맛이 필요한 경우에는 단 와인으로 가미를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는 발효 중간에 브랜디를 첨가하여 그때까지 남아있는 포도당에 의해 단맛이 유지되는 또 다른 유명 강화와인 포트와는 구별된다.
세리의 종류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이를 결정하는 데에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플로르(Flor)라고 부르는 지역 효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발효 중의 와인 위에 자연적인 플로르 층이 덮이게 되면 와인의 산화를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유의 섬세한 맛을 가진 Fino 타입의 세리가 된다.

그러나 만일 플로르 층이 생기지 않으면 산화가 일어나 가장 짙은 색깔을 가지는 Oloroso 타입이 얻어진다. 이 형태의 세리는 흔히 cream Sherry라고도 불린다. 또 하나의 형태는 Amontillado라는 것으로 이는 플로르가 생긴 상태에서 1년 정도 오크통에 저장하고 나서 플로르 층이 사라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되면 약간의 산화가 일어나면서 색깔도 조금 진하고 견과류 향이 나는 Amontillado형이 된다.
세리를 만드는데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품종에는 Palomino, Pedro Ximenez, Moscatel의 3개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중 Palominjmo가 가장 전통적이면서 거의 대부분의 제품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실 세리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지지만 최대 소비국인 영국을 통해 세계에 소개되었다고 보면 된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강대한 식민 제국을 건설하였던 영국의 위상 때문에 세리는 세계 각국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영국내에서의 소비량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세계적으로도 세리를 알고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애주가들에게는 잊혀진 술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술은 아니나 기회가 될 때 반드시 종류별로 한번은 시음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술이다.

스페인 헤레스(세리) 지역 위치.
강화 와인 세리의 미니어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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