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걸쳐 500억 투자해 개발한 국산 신약 제네릭 수준서 가격결정
가격보상 없는 신약개발 지원은 ‘허울’…합리적 약가정책 절실

[의학신문·일간보사=김영주 기자]국내 신약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약가 관련 토론회 등에서의 업계 발 현황에 따르면 신약개발을 위한 시간과 비용 투자에 비해 가격은 기대치를 전혀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에 대한 합리적 약가책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어렵게 개발한 국내 신약, 낮은 약가책정에 출발부터 ‘난관’

익히 알려진 국내 신약들이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 지에 대한 속사정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약가책정이 그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 신약들이 낮은 약가책정 및 가격인하로 신음하고 있다. 업계는 합리적 약가책정을 촉<br>구하고 있다.<br>
국내 신약들이 낮은 약가책정 및 가격인하로 신음하고 있다. 업계는 합리적 약가책정을 촉
구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2020년 6월 자체개발한 항생제 신약 ‘시벡스트로’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PMS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지만 실제로는 낮은 약가가 결정적 이유였다는 게 중론이다. 대화제약의 리포락셀액은 기존 주사용 항암제였던 파클리탁셀을 세계 최초로 먹는 약물로 개발한 주목되는 사례이지만 낮은 약가 책정으로 협상이 수년째 결렬되면서 출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낮은 약가 탓에 해외에서 먼저 출시되는 사례가 있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한 수면장애신약 '수노시'와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는 지난 2019년 3월과 11월 한국이 아닌 미 FDA허가를 얻어 미국 시장에서 첫 발매가 이뤄졌다.

낮은 약가책정도 불만인 데 이를 감수하고 기껏 발매했더니 이번엔 약가인하가 발목을 잡는다.

국내 기업체의 경우 자금력 부족으로 출시 이후 적응증을 하나씩 확대하는 등 지속적인 사후 투자를 통해 제품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패턴으로 인해 LG화학의 ‘제미글로정’, ‘제미메트서방정’의 경우 사용량이 확대될 경우 약가가 인하되는 ‘사용량-약가협상’ 제도가 적용돼 출시 이후 6회나 약가가 인하됐다. 국내신약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역차별적 약가제도로 인해 손실을 떠안게 된 셈이다.

14번째 국산신약인 일양약품의 항궤양제 '놀텍'은 PPI제제로 2008년 10월 28일 위산분비를 억제해 소화성궤양을 치료하는 효능을 입증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후 1년여 만인 2009년 12월 1405원의 보험약가를 받고 시장에 선을 보였지만, 지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사용량·약가 연동제 적용을 받으면서 약가가 16.7% 깎인 바 있다. 이와 별도로 2013년에는 환자 수가 많은 역류성식도염 관련 적응증을 추가, 판매량 증가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기존 약가의 3.99%를 사전에 추가 인하하기도 했다.

보령제약의 고혈압신약 항암신약 카나브의 경우 670원(용량 60㎎ 제품)에서 653원으로 가격이 이미 한 차례 인하됐는데 향후 용량이 다른 30·120㎎ 제품이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돼 가격 인하 초읽기에 들어갔다. 카나브는 우리나라의 낮은 신약 가격 참조로 인해 터키에서 원산지 가격의 약 60% 미만의 공급을 요청하며 수출이 무산된 경험이 있다.

14년동안 500억 투자해 개발했지만 복제약에도 못 미치는 가격

산업계는 국내 약가제도가 기업체들의 신약개발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한국의 경우 신약개발에 평균 14년간의 시간과 500억원의 비용이 투입되지만 연구개발의 결실인 신약의 가치가 평가절하 돼 신약 개발 유인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신약 가격은 OECD 국가 및 대만의 평균 가격의 약 42% 수준이며 신약의 74%는 최저가로 분석된다. 심지어 국내 ‘신약’의 약가는 복제약인 ‘제네릭’ 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국내 신약의 약가 결정 프로세스는 제네릭 등을 포함하는 대체약제의 가중평균(시장가격)으로 산정된 후 협상을 거쳐 대체약제 가중평균가격의 90~100% 수준에서 최종 등재되기 때문이다. 제네릭의약품과 나온 지 오래되어 약가가 인하될대로 인하된 약 등이 포함된 대체약제 대비 90~100% 수준에서 약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낮은 신약 약가는 국민들의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신약 접근성은 35%. 신약 10개 중 6개는 정부가 제시한 약가가 낮아 한국시장 발매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주요 선진국인 미국(87%), 독일(63%), 영국(59%), 일본(51%)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전세계 신약이 한국 시장을 꺼리면 의약품접근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산업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물론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 보장 측면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적정 약가 책정 안되면 국내 신약개발 퇴보

업계 관계자는 “1개의 신약이 출시되기까지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의 시간과 국내 기업체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며, 어렵사리 개발에 성공한다해도 출시 이후에도 10년 가까이 R&D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실제로 보이는 매출액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투자 비용으로 적자를 면치못해 개발비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적정한 약가가 책정되지 않으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신약개발은 퇴보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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