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26>

[의학신문·일간보사]

물에 빠져 죽은 맥주 배달인의 사체가 시체공시장(屍體公示場)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이빨 사이에 보라색 과꽃이 끼워져 있다. 메스를 들어 가슴의 피부를 가르고, 혀와 입을 잘라내자 과꽃이 나왔다. 대팻밥과 함께 꽃을 넣어 시체를 꿰맨다. 사람의 몸이 꽃병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과꽃에게 권한다. ‘꽃병이 되어버린 시체 속에서 편안히 쉬거라!’ 역겹고 괴기하여 숨까지 막히는 이 상황을 고트프리트 벤은 시로 표현했다.

“익사한 술배달꾼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누군가 그의 이빨 사이에/짙은 보라색 과꽃을 끼워넣었다/나는 가슴에서/피부 밑으로/긴 메스로/혀와 입천장을 도려냈고,/나는 꽃과 맞닿았지/모로 누운 뇌에서 꽃이 미끄러져 나왔지/시신의 가슴을 꿰맬 때/대팻밥을 집어 넣은 틈새로/나는 그만 그 꽃을 꾸겨넣었지/네 꽃병 속에서 실컷 마셔라!/편안히 쉬어라/작은 과꽃아!” ―「작은 과꽃」 전문

독일 표현주의 시의 선봉인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1886〜1956)의 시 「작은 과꽃」이다. 이 시가 실렸던 시집 『시체공시소와 다른 시들(Morgue und andere Gedichte)』은 스물 여섯 살 벤의 악명과 유명을 역겹고 멋지게 드높였다. 사체와 꽃이 한데 섞여 놓여졌듯이.

의사 고트프리트 벤(왼쪽)과 시인 고트프리트 벤

독일 작은 마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뜻에 따라 신학을 배우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군의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의학뿐 아니라 문학과 문헌학 등을 배우며 시인의 자질을 싹틔웠다. 뒤에 베를린대학 의학부로 옮겨 수석 졸업하였다. 졸업후 군의관 생활을 하고,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에서 피부비뇨기과 개원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가 제대하여 베를린에서 피부비뇨기과 개원을 했다. 다시 병무청 군의관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다가 다시 개원 진료를 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쉰일곱 살의 나이에 또다시 군의관으로 차출되었다. 피부비뇨기과 군의관 벤의 진료 대상은 주로 전쟁 중에 군인을 상대하는 창녀들이었다. 공창지대 여성들의 성병 여부를 검사하여 업무적 쓸모를 판정하였다.

2차 대전이 끝나 다시 베를린의 의원으로 돌아왔다. 병원과 군대를 무려 네 번이나 오가면서도 시를 짓고, 산문을 썼다. 시집 『아들들, 신시집』과 『살(肉)』, 산문집 『두뇌』등. 또한 그 사이 두 명의 아내와 사별하고 세 번 결혼하였다. 죽음이란 결과만을 가져오는 전쟁은 그를 절망으로 이끌었고,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관주의에 빠뜨렸다. 독한 비관주의는 예술적 표현을 유일한 목적이 있는 행동으로 보는 표현주의와 내향적 허무주의에 쌓인 초현실주의로 더 끌어들였다. 벤은 인간을 마치 병에 걸린 또 다른 종류의 동물로 그려냈다. 섬뜩한 의학용어를 적극적으로, 아니 어쩌면 병적으로 구사하여 절망과 죽음을 노래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병적 시인(the morbid poet) 고트프리트 벤’이라 부른다.

비관적 절망에서 시는 그의 생존도구였을까? 아마도 그는 갇혀버린 자아를 열고 강박적인 생각을 쏟아내는 방법의 하나로 글쓰기를 택했을 것이다. 시뿐만이 아니었다. 편지 쓰기에도 열중하였다. 브레멘(Bremen)의 상인이면서 법률 전문가이자 괴테 전문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올체(Friedrich Wilhelm Oelze)와 주고받은 천오백여통의 편지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1956년 5월, 벤은 일흔 살이었다. 막연히 류마티스성 요통이겠거니 생각하여 온천지에서 휴양과 치료를 했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베를린으로 돌아와 1956년 7월 6일, 6개월 암 진단을 받았다. 바로 그 다음날, 맑은 여름 7월 7일, 고트프리트 벤은 죽음에 닿았다.

예기치 않게 빠른 죽음? 의사들의 예견이 틀렸을까? 하노버 의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실 아네트 터프스(Annette Tuffs)는 고통 가운데 올체에게 보낸 벤의 편지에서 다음의 사연에 주목했다. “내 상황에 대해 의심 할 여지가 없지만 나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나는 궂은 고통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 늘 옆을 지켜주는 아내에게 마지막 날들의 고통을 덜어 달라고 했습니다. 모두 빨리 끝날 겁니다. 그 시간은 나를 놀라게하지 않을 것입니다.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터프스는 담담히 의견을 보태고 있다. “아내 일세 벤(Ilse Benn)은 약속을 지켜 치과 의사로서 처방할 수 있었던 모르핀을 사용했을까? 추측컨대 그녀는 그렇게 하여 그를 최악의 상황에서 지켰을 것이다.”

벤의 죽음은 의사와 병적 시인, 주검과 과꽃 등의 이어등렬(二語等列)로만 설명이 가능한가?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