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원장

-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전 세계가 COVID-19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현재 확진자가 늘고 있지만 사망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생명을 놓치지 않겠다는 한국의사들의 헌신과 높은 의료수준의 결과다. 의료계의 이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로부터 돌아온 것은 배신감과 납득하기 힘든 황당한 정책들이었다.

의료계에 대한 일말의 신의도 배려도 없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 주었다. 전혀 효율을 찾을 수 없는 선심성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뻥튀기에 가까운 황당한 숫자로 의대정원을 늘리겠다고 했다. 코로나를 빌미로 원격(비대면)의료를 슬쩍 밀어 넣으며 검증되지도 않은 첩약을 보험에 적용 시켰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듯이 고생은 의료진이 다 하고 생색은 정부가 냈다. 의사들은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했다. 이들에게 의사들의 자존심이 망가지고 의료시스템이 왜곡되는 것은 전혀 고려 밖의 일들인 것 같다. 선거의 표만 되면 못 할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덕분에”라고 말했으니 의료진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다한 것이 아니냐는 뻔뻔한 발언까지 쏟아내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의사들을 물건 취급하는 ‘의사는 공공재’라는 무식한 발언으로 의사들을 경악하게 했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여당의원까지 나서서 의사를 공공재라고 취급하고 있다. 심지어 재난관리 자원물자에 의사를 포함하고, 북한에 의사를 강제로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되기도 했다. 의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세계관과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어 왔는지 짐작이 간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거고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물건이나 기계가 아니듯이 의사 역시 인격체다. 인간은 인격체이기에 인격이 무시당할 때 분노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세 가지 행위 중에서 모자람과 지나침을 악덕으로 보고, 양극단의 중간인 중용(中庸)을 미덕(arete)으로 보았다. 분노에 있어서 모자람은 당연히 화를 낼 일에 화를 내지 않아 바보취급을 당하거나, 자기나 친구들이 모욕을 당해도 수수방관하는 노예 같은 상태를 말한다. 분노의 지나침은 화를 내서는 안 될 일에 화를 내거나, 너무 지나치게, 너무 오래 화를 내는 경우이다. 분노에 대한 중용은 온유함이다. 온유함이란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한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들은 의학의 가치가 무너지고 의사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수수방관하거나 화를 내지않는 바보 집단이 아니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악덕이다.

급기야 분노한 젊은 의사들이 단계적 파업에 돌입했다. 정부와 집권당의 속보이는 정치행위가 원인제공을 한 것이다. 의대생들과 의사협회도 전공의 파업에 동참했다. 의대생들은 본과 4학년을 중심으로 의사국가고시 거부를 선언했다. 당황한 정부는 협상을 요청했다. 정부와 의사협회는 신뢰하기 힘든 협상결과 발표가 있었고, 의사들은 파업을 철회했다. 의사들과 함께 투쟁하다 의대생들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사실 의사들과 함께 투쟁에 동참했지만 학생들의 휴학과 국시거부 투쟁은 환자진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의대생으로 불의에 항의하는 정의로운 외침이고 저항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언론들과 정부, 국회의원들은 학생과 의사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고 의과대학 학생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난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원인은 자신들이 제공했으면서 잘못은 의대생들에게 떠 넘겨 버렸다. 기가 찰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선배의사들의 성숙하지 못한 발언들과 갈지(之)자 행보는 이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버렸다. 선배로서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분통이 터진다. 이들이 입은 깊은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선배의사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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