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분류부터 처리까지 인력·재정 확보 너무 벅차다
'병원내 멸균시설 구비가 대안'…정부지원 및 수가보전 바람직

[의학신문·일간보사=이종태 기자] 급속히 증가하는 의료폐기물의 처리를 위해 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의료계가 쓴소리를 냈다. 의료기관에서 의료폐기물을 분류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력난이 극심한 상황인 만큼 지원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

또한 병원내에서 자체적인 멸균시설 등을 운영하면 소각장의 추가 설립문제에서도 자유로워지는만큼 정부가 지원금이나 수가 등으로 보전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가천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10일 오전 개최된 의료폐기물 처리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각 의료기관에서 폐기물을 분류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엄중식 교수는 “최근 폐기물이 증가되고 소각시설은 정체되면서 이제는 종합병원에서도 부담을 느낄정도로 처리비용이 두배 세배 상승하고 있다”면서 “자체조사를 해보니 환자 한명당 하루에 처리비용이 3000원정도 발생하고 있는데 국내 환자수를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매일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병원들이 부담하고 있는 처리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재정악화는 가속되고 있는데 요양병원들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면서 “의료기관의 이런 현실속에서 일반의료폐기물로 분류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에 따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감염관리활동의 일환으로 배출되는 폐기물에 대해 반코마이신 내성균 등 감염성 질병을 찾아내기 위한 감시배양을 진행하고 있다.

위험환자를 찾아내 해당 의료폐기물에 대한 위험도를 구분해서 관리·처리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정부에서 병원들에 감시배양비용을 보전하고 있지 않아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일부 병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엄 교수는 “결국 요양병원을 비롯해 많은 병원에서 스크리닝이 안되고 있어 폐기물에 대한 분류 및 지정도 논의되기 쉽지 않다”면서 “최근 폐기물 자체를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시도하는 순간 간호사들이 업무과다로 대거 사직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역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처리환경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에 대한 고려가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의료법인이 수익을 올리기도 쉽지않은 상황에서 정부 지원조차 담보되지 않는다면 효율적인 처리시스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의료기관내에서 폐기물을 정확히 분류·관리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은 의료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 이세라 기획이사는 현실적으로 소각시설을 추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멸균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을 늘려 줄 것을 촉구했다.

이세라 이사는 “유럽에서는 일반의료폐기물을 동일하게 소각시설에서 처리하고 있다. 800도로 소각하면 멸균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면서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부에서 공포마케팅을 이용해서 시설의 추가설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면 일반소각시설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내에서 멸균시설을 마련하면 되는데 문제는 재원마련”이라면서 “결국 정부가 시설을 지원해주고 수가를 반영해주면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시설을 추가하는 문제도 해결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만약 요양병원 등 규모가 크지않은 기관에서 멸균시설을 마련하기 쉽지 않아 자체적인 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면 의료전달체계내에서 규모가 큰 의료기관이 대신 처리해 줄 수도 있다고 첨언했다.

또한 그는 20년된 의료폐기물처리제도에 대한 모순도 함께 지적하고 나섰다. 가정에서 기저귀를 배출하면 그냥 쓰레기지만 신생아실에서 배출하는 기저귀는 의료폐기물로 분류되는 등 장소에 따라 폐기물의 위험도가 달라지는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폐기물 총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 이사는 “오래된 제도 아래서 많은 규제들이 이어지면서 의료기관을 운영하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안그래도 규제가 많아 수익을 내기 쉽지않은 상황에서 병원에서 자체해결 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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