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직(professional)’의 포괄적 의미를 진정성과 성실성, 책임감을 가지고 높은 과학기술적 직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타심, 탁월성과 같은 특성과 가치들의 조합으로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계에서 전문직업성에 대한 초창기 해석은 의사만이 독점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이에 대한 지식은 의사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었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의료 규제와 교육 개념, 주요 교육체계는 새로운 신입생을 선발해서 학생을 의사로 그리고 의사를 전문의로 만들고 준비시키는 것에 주로 맞추어져있다. 전문직은 이 준비기간을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철두철미하고 효과적으로 진행해 왔다. 의사의 전문가적 자율성과 임상적 자율성의 대외적 기준이 되는 진료표준(standards of practice)과 의학교육도 의사 스스로가 독점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이러한 개념의 전문직업성을 선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기저에는 대중의 깊은 신뢰와 존경심, 자부심 그리고 절제력과 자존감을 함축하고 있었다.

높은 수준의 교육적 구속력을 지닌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자유방임적이면서도 임의적인 ‘마음대로 하십시오’와 같은 개인주의나 아마추어리즘(amateurism)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이 기존 의사들이 전문직 표준(professional standards)을 잘 지키고 의사들 전체가 전문직업성 평생개발(CPD)을 통해 전문직의 수준과 역량을 잘 유지하는 자기 절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 대중은 의사 자율규제 지지

전문직업성에 대한 의사의 이런 관점은 19세기와 지난 세기 말까지 오랜 기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의과대학의 지도층 인사, 졸업 후 연관기관, 전문가 동료, 전문학회와 면허규제기관 사이에서 일반적인 통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문화는 다음 세대 의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사회도 기꺼이 이러한 의사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였다. 사회는 급증하는 새로운 의과학과 기술로부터 자신들이 이득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 개개인이나 의사단체 모두를 신뢰했고, 자신의 이익보다 환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무능하거나 형편없는 진료를 용인하거나 비전문가다운 태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있었지만 일반 대중은 전반적으로 의사들의 자율규제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동안 의학 전문직업성에 관한 전통적 관점은 전문직 안팎에서 심각한 비난을 받아왔다. 일반적으로 서구권에서 환자는 급속하게 진화하는 소비자, 여성 인권 그리고 시민 권리 운동 흐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길 원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나 수동적 방어를 넘어 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개인의 권리와 자격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대 흐름을 타고 환자는 수준이 떨어지는 진료를 하는 의사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환자의 목소리와 권리가 높아지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문직이 신뢰를 다시 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답을 일반 시민의 시선에서 찾아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아프면 충분히 수련 받은 의사의 돌봄을 기대한다. 환자의 관심은 온전히 ‘자격을 갖춘’ 의사에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황스러운 사건이 영국에서 발생했다. 영국 브리스톨 왕립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아이들에게서 유독 사망률이 높고 뇌손상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영국 GMC는 곧 해당 의사의 심장 수술을 중단시켰다. 환자의 안전에 대한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이런 사건을 통해 전문직 집단이 수행능력이 떨어지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의사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더 나은 방법에 대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의료 규제 장치에 더 많은 일반인들의 참여하기를 강하게 요구했다. 좀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고 의사의 숙련도나 수행 능력의 일관성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 발생 후 불거진 시민의 기대와 요구에 대해 영국의사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직업성에 대한 대중의 비판이 가지는 타당성을 기꺼이 인정했다. 전문직업성에 대해 사회가 새롭게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어 갔다. 사회와 의사집단이 원하는 신뢰 관계를 다시 세워갔다. 영국의사들은 만약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문직으로서의 지위를 잃거나 신뢰를 받지 못할 수 있으며, 임상적 자율성과 전문직으로서의 자율성에 대한 특혜가 사라지고 경영 통제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시대 요구 전문직업성 체득해야

정작 전문직은 과거 시스템을 선호하더라도 몇몇 국가에서는 전반적인 시스템을 과거의 것으로부터 ‘새로운 전문직업성(new professionalism)’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변화는 광범위하게 다가오고 있다.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 과정은 의사들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고, 느리며, 감정적으로도 북받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의사들은 내향적이고 보수적인 전문직종이기에 오랜 습관은 잘 없어지지 않으며, 새로운 변화를 거북해한다. 하지만 미래의 의사인 의대생과 새로 배출되는 의사는 반드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에 걸 맞는 전문직업성을 배우고 체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온 사회와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고, 이것이 곧 자신들에게도 이로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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