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보건의료 육성전략 과제

ICT 의료 규제법도 목표에 부합 진화돼야
지능정보 의료시대 기술간-정책간 연계성도 중요
美 ‘합리적 인간’ 기준 ‘Common Rule’ 개정 주목

유소영 박사
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 빅데이터센터

[의학신문·일간보사] 우리는 한편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어 연명 치료를 받는 대신 개인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또 동시에 우리는 수명을 최대한 연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대에 동시에 살고 있다.

이 두 현상은 결과는 죽음의 결단과 삶의 연장으로, 서로 상반되는 결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모두는 어떻게 하면 보건의료 기술 발전에 따라 기대 수명이 길어진 현재, 어떻게 하면 그 생애 동안 인간다운 삶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개별자들의 고민에 따른 우리 사회의 결론이다. 즉, 이 둘은 같은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간다움”의 요청은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s Technologies)로 대변되는 ‘지능정보화 의료 시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ICT는 장소와 시간의 제한 없이 일반인들에게 예방과 관리를 통해 우리의 건강한 삶(Wellness care)을 더욱 추구할 수 있도록(More), 더 낮은 가격으로(Less), 더 많은 성능을(More)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의 지능 정보화 의료를 구현할 수 있는 동인 기술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ICT 기반 의료로는, 빅데이터 기반 ICT를 활용한 정밀의료, 보건의료 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 빅데이터 기반 AI 의료기기, 원격진료 및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등이 있다.

한국은 인간중심의 지능 정보화 의료시대의 핵심으로 손꼽히는 ICT는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발표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ICT는 접근성·이용도·활용력 모든 측면에서 1위에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왜 지능 정보 의료를 선도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지능 정보화 의료는 ICT 기술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적이고 통합적인 정책, 즉 비 ICT 요소도 선제적으로 고려되었어야 했다.

UBS(Union Bank of Switzerland)에서 지난 2016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 혁명 세계 경쟁력 순위(Global Competitiveness Report, using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Categories)에서 우리나라는 ICT 인프라 구축 등 기술 활용도 측면에서는 10위에 해당하나, 이에 대한 법제의 유연성 등은 65위를 차지하였다. 말레이시아가 32위, 일본이 12위, 중국이 55위를 차지한 것을 비교하여 보면, 정보 의료 시대를 가능케 하는 규제 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지능 정보화 의료는 결론적으로 준비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3차 산업혁명 시대와 달리 지능정보화 의료 시대는 ‘모든 것의 연결’을 통하여 가능해 지기 때문에,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용하게 사용한 규제 정책은- 즉, 개별 정보나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각 개별 법령을 준수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정보 주체로부터 정보 사용 요청 건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이 상세한 동의 구득이 필요하다는 “충분한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 체계- 현 시대에서는 더 이상 유효한 규제정책이 아니다. 규제는 그 규제 정책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그 규제가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이 이의 시행으로 받을 수 있는 이익이 위험보다 충분히 상회될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이를 인지한 미국의 경우, 지난 2017년 1월 19일, 우리나라 임상연구 특별법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 에 해당하는 미국 복지부(DHHS) ‘Common Rule(45 CFR 46, Subpart A’를 전면 개정하였다.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 중 하나는 ‘전형적인 합리적 인간(typical reasonable person)’ 기준을 상정하고 이를 개정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변화된 정책으로는 첫째, ‘동의 제도’가 있다. 현재의 임상연구 동의 제도는 연구자가 연구에 대한 모든 자세한 사항을 동의서에 나열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를 대상자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개정 Common Rule에서는 이러한 동의 체계는 우리가 인간을 너무나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대상자가 동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실제 그가 연구 참여 여부의 의사결정을 높이는 설명이지, 법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사항을 나열하는 것은 연구대상자의 연구에 대한 이해를 낮추고 오히려 보호되어야 할 연구대상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정 Common Rule에서는 연구자는 임상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정보(연구 목적, 예상 기간, 준수 절차 등)를 중심으로 대상자에게 설명하여 실제 연구 참여 여부 의사결정을 높이는 한편, 대상자 설명문은 언제나 대상자가 찾아볼 수 있는 웹사이트에 올려놓아 필요할 때 직접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개정 Common Rule에서는 불특정 목적을 위하여 개인을 식별할 있는 정보(식별자)를 포함하는 경우에도 ‘포괄동의(Broad Consent)’를 인정하고, 포괄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추후 IRB 심의 면제를 가능하도록 하여, 정밀의료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이에 대해 대중들이 혜택을 더 빠르게 받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생명윤리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서 포괄동의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간대상연구·인체유래물 연구에서 식별자를 포함한 경우는 어떠한 경우에도 IRB 심의 면제가 불가능하도록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개정 Common Rule의 포괄동의 인정은, 2017년 9월 UNESCO IBC(International Bioethics Committee)에서 발표한 ‘Report on Big Data and Health’에서 ‘포괄동의는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 또는 구체적 동의(specific consent)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본인의 정보로 수행할 수 있는 가능한 범위(range of possible research)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명시한 것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이 같은 지능정보화 의료 시대에서, 포괄 동의로의 동의 프레임 전환은 포괄동의는 정보주체가 가능한 범위에 대해 동의하여 진행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또는 동의권의 축소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더불어, 개정 Common Rule에서는 2020년 1월 20일부터 미국 내 다기관협력 연구인 경우 연구계획서(Protocol)이 하나라면 ‘단일 IRB(Single IRB)’ 사용을 의무화한다. 의무화한다는 것은, 예외 조항이 없을 경우, 이를 연구자는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소속되어 있는 각 IRB로부터 연구계획에 대한 승인이 필요한 현 정책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의학 연구 및 개발이 어려우며, IRB 승인이 되지 않은 기관에서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계획에서 명시한 연구대상자의 수를 달성할 수 없어, 연구 결과에 오류가 발생하고, 이는 곧 일반 대중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문제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One Protocol, One IRB 정책으로, 미국에서는 앞으로 다국가 다기관 빅데이터 기반 연구 수행 시, 상당 부분 정책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과 함께 수행하는 다국가 다기관 연구(특별히, 경쟁등록 연구)에서 현 생명윤리법 IRB 정책(연구자 소속 기관 당 IRB 심의 원칙)을 고수할 경우, 임상연구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또 중요한 개정 Common Rule의 의의는, 산재되어 있는 임상연구 관련된 여러 미국 규정들(예, HIPAA, 21 CFR Part 50, Part 56, 21st Century Cures Act)을 Common Rule 내 반영하여 ‘규정 간의 정합성’을 높였고, 임상 연구자가 이 규정만을 준수하여도 연구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도록 하였다. 이는 지능정보 의료 시대에는 기술들의 연결성(connectivity)만 중요한 것이 아닌 ‘정책 간의 연계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인간중심의 기능 정보화 의료 시대로 가게 되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결정하였다면, ICT 의료를 규제하는 법제도 그 목표에 부합하게 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제는 결국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 보편적 인간이 변화된 법제로 인하여 이 시대에서 원하는 가치인 생애 동안 인간단운 삶이 더욱 온전히 영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지능 정보화 의료 시대에 적합하도록 그 프레임을 변화하여야 하는 보다 뚜렷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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