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인습에서 고통 받는 여성을 구하라!

美 감리교선교회 지원받아 1887년 서울 정동에 설립
국내 여성 대상 의학교육 시작…이화의료원 태동 시초
2018년 건립 이화의대 마곡캠퍼스 내 ‘보구여관’ 복원

오는 2018년 새로 들어서는 이화여대 의과대학 마곡캠퍼스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이 복원된다.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의 건강권과 인권 향상을 위해 누구도 가지 않던 길을 개척해 ‘여성을 위한 의료’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보구여관은 현재 이화의료원의 전신이다.

▲ 보구여관

유교 중심 사회였던 조선은 19세기 후반, 근대화의 요구에 따라 서양 문명과 기술을 널리 받아 들였다. 하지만 문명과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억압하던 사회적 풍토에는 변화가 없었다.

1886년 근대 의료시설인 ‘제중원(濟衆院)’이 설립됐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수 없었던 것.

의료진 대부분이 남성인 제중원에서 여성이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내외(內外)도 모르는 짐승’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메리 스크랜튼(Mary Scranton, 1832∼1909) 여사는 미국 감리교 해외 여선교회의 지원을 받아 1887년 10월, 서울 정동에 병원을 세우고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 1862-1930)를 초빙해 여성 진료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병원인 이 병원에 고종 황제는 1888년 여성을 보호하고 구하라는 뜻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이라는 이름을 하사했고, 그 이름에 걸맞게 보구여관은 질병과 인습에 고통 받던 많은 여성들을 보호하고 구했다.

또한 1892년 보구여관의 의사 로제타 홀(Ro-setta S. Hall, 1865~1951)은 다섯 명의 여학생을 선발해 의학 교육을 시작했다.

▲ 이대 마곡 캠퍼스 조감도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학교육이며, 이화의학 역사의 시초가 된다. 이렇듯 이화의학은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의료’라는 뜻 깊은 첫걸음을 떼었고, 우리나라 여성 의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배꽃이 단아하게 피는 정동의 이화학당 옆 건물에서 시작한 보구여관은 1892년, 가난한 이들의 진료를 위해 동대문에 ‘볼드윈 진료소(Boldwin Dispensary)’를 설립했다. 의사 릴리안 해리스(Lillian Harris, 1863~1902)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볼드윈진료소는 1912년에 보구여관과 통합되며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Lillian Harris Memorial Hospital)’으로 확대·개원됐다.

이화의학에 헌신한 릴리안 해리스를 기념해 동대문에 설립된 이 병원은 당시 최대 규모인 360평의 병원으로 특히 산부인과 진료에 뛰어난 동대문부인병원으로 널리 알려져 연 1만5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아울러 1903년, 보구여관은 현 간호대학의 토대가 되는 ‘간호원 양성소’를 설치하고 1906년, 두 명의 간호사를 배출했다. 또한 여성 의학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로제타 홀은 1928년 ‘여자의학 강습소(Woman’s Medical Institute)’를 설립했고, 이는 훗날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보구여관에서 시작돼 동대문부인병원까지 이어진 이화의 선구적인 의료 활동, 의학 교육은 식민지 치하 어두운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정진·발전했다.

이화의료원 관계자는 “보구여관 정신을 계승한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을 거쳐 현재 마곡에 이화의료원 제2병원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라며 “여성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료의 씨를 뿌렸듯이 발전한 한국 여성 의료를 세계에 보급하는 선순환의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오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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