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영선
벌교 삼호병원 공중보건의사

4월 16일 점심, 나는 의료기관으로 근무지가 변경되어 보건소 직원들과 마지막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창 너머의 TV에서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하였으나 ‘전원구조’하였다는 뉴스를 보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 채고흥에서의 마지막 오찬을 즐겼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은 심각하였고, 식사를 하던 중 긴급의료지원 명령을 받고 가운 하나만을 걸친 채 구급차에 몸을 싣고 부랴부랴 진도로 향했다. 진도를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내가 얼핏 보았던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대한민국 전체를 깊은 슬픔 속으로 몰아넣을 ‘세월호’참사의 시작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진도를 향하는 길목마다 경찰들이 신호를 통제하며 내가 탄 구급차를 보내주는 것을 보며 순간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살폈다. 내가 심각한 사건이 아니라 생각하게끔 했던 ‘전원구조’라는 보도는 완전한 오보였고, 실제로는 실종자가 300명 가까이 된다는 소식에 내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 모를 뜨거운 것이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진도로 향하는 도중 여러 대의 구급차들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은 급해졌고, 아주 짧은 시간만에 진도 팽목항에 다다랐다.

진도 팽목항에 도착하자, 구급차가 줄잡아 수 십여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1차 구조가 끝난 시점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구급차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의료진을 향해 지시를 내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을 상담하고 위로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팽목항의 지휘본부로 가보았지만 그곳은 내 기대와는 달리 어떠한 질서나 체계도 없이 의료진, 경찰, 군인, 자원봉사자, 언론사 기자 등이 뒤엉켜 답답함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초기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지속되지 않기만을 바랬지만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발만 동동 구른 채 어떠한 임무도 부여 받지 못하였고, 구급차에서 대기만 하다 고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차라리 내맘대로 진도체육관으로 구급차를 돌려 구조자와 가족들을 위로할 용기가 왜 없었는지 내 자신이 한스러웠다.

다음날 저녁에 인천으로 올라오는 버스안에서 TV를 통해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이미 실종자 가족이되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구조 방송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 또한 같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말이 지나며 ‘세월호’는 기적을 바랬던 우리의 희망과 함께 물속 깊숙이 자취를 감추었고 어느새 실종자는 사망자가 되어 하나 둘씩 우리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정부와 언론은 쉴새 없이 실수를 연발하며 국민에게 더 큰 아픔과 실망을 안겨주었고 구조에 대한 희망은 절망을 넘어 분노로 변해가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양으로, 누군가는 영웅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은 슬픔에 대한 공감, 최선의 노력, 그리고 충분한 설명이라는 것을 알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직 우리는 아주 작은 희망마저 버리고 있지는 않다. 아니 결코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점점 상처받고 좌절하며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상처가 극복가능하고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상처가 아물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대한민국은 희망과 신뢰를 잃은 채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지만 다시 떠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당분간은 가질 수 없을 것 같기에 우리의 현실은 더욱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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