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대한민국은 ‘로또’ 당첨번호 발표에 들썩인다. 수만 명 아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숨어서 자신의 번호를 맞춰보고 이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매주 반복하고 있으니 이쯤 하면 운동선수들의 ‘루틴’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미신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 필자 또한 가끔은 ‘로또’에 인생역전을 기대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유혹은 결코 작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국내에서 처음 복권이 발행된 때는 1945년 7월이다. 당시 일제가 군수자금 조달 목적으로 첫 복권을 발행하였으나 곧 광복을 맞이하며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어려운 나라 살림 속에서 다양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수십 년간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다 대망의 2002년에 새로운 형태의 ‘로또’라는 복권이 생기며 국내 복권 시장은 현재까지 최전성기를 구가 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부의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로또’등 복권에 인생역전의 희망을 건다. 내가 노력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라는 것은 운 또는 요행 등에 나의 인생을 맡기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에 누구나 쉽게 ‘로또’에 다가선다. 수많은 학자들이 ‘로또’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인생역전’이라는 소박한 꿈에 대한 욕망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러나 진료현장이라는 현실의 작은 부분 속으로 들어와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생역전이라는 소박한 꿈이 절로 이해될 쯤, 이러한 꿈 자체가 “노력과 과정을 경시하고 달콤한 결과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얄팍함과 간사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정녕 나의 노력으로는 결코 없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맞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시절,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상담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러한 질환이 생기게 되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빨리 낫기만을 기대했다. 발병한 정신질환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에 그 시급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질환을 유발할만한 개인의 성격, 가정환경, 생활모습 등을 뒤돌아보고 고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결국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잠시 좋아졌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제자리 걸음, 아니 더욱 악화되는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건소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현재에도 수많은 환자들은 인생역전의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각종 만성질환을 앓게 되어 보건소를 찾아오지만 환자들이 원하는 결론은 약물 하나로 모든 것을 일거에 역전하겠다는 것 뿐이다. 자신이 질병을 얻게 된 생활습관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살면서 약물 하나로 정상 수치로 돌아가려는 것은 ‘로또’를 사는 행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수많은 환자들이 인생역전을 바라고 잔뜩 기대하지만 시간과 돈 낭비에 결국 빈 손으로 제자리에 돌아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경시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될까 걱정스럽다.

‘인생역전’이라는 허황된 꿈보다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태도야 말로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원치 않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분들이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영선 전남 고흥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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