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선 공중보건의사로 일을 하다 보니 전공의 시절과는 다르게 섬에 계시는 할머니를 많이 마주하게 된다. 병원선에 구비되어 있는 약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아, 여러 가지 증상에 대해서 맞춤형 약을 처방하기에는 한계점이 많다. 그래서 한계에 부딪힐 때 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가지도 안되는 병원선 약품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약품은 뭐니 뭐니 해도 골관절염의 증상완화제인 붙이는 소염진통제, 일명 ‘파스’다. 할머니들은 언제나 파스 한 장만 더 달라고 조르고는 하신다. 골관절염으로 인해 밤낮없이 찾아오는 허리 무릎 통증을 가장 불편해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실 것이다.

또한 대부분이 독거노인이기 때문에 섬에 있는 몇 평 되지도 않는 기와집에서 먹을 거라곤 정부에서 제공해주는 쌀과 밑반찬이 전부인 것 같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콩, 김, 나물뿐, 도시에서 살던 내 눈에는 부실해보이고, 안타까워 보일뿐이다.

하지만, 내가 방문 진료를 하면서 만나본 독거노인 할머니들 중에서 표정이 어두운 분은 없다. 다들 유쾌하고, 표정이나 목소리 톤이 밝다. 파스 한 장에도 “고맙다” “감사하다”를 연발하고, 상처연고 한 개에도 웃음꽃이 만발한다. 곁에서 얘기만 듣고 있어도 ‘살아있네~’라는 생동감이 저절로 느껴진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저절로 하게 된다.

그동안 대도시에서 지낸 나의 과거에 비추어 볼 때, 섬에서 느끼는 할머니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도시사람들 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밝고 만족스러워 보이곤 한다. 왠지 모르게 도시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어둡고, 짜증나있고, 불만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집도 넓고, 차도 있고, 먹을 것도 맛있는 것으로 풍부하게 넘치고, 돈도 많고, 병원과 약국도 가까이에 많은데…. 왜 우리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할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첫째, 욕심이 많고, 작은 것, 적은 것,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모른다. 끊임없이 쟁취하고 노력한다. 둘째,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여,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 비슷한 사람에게는 경쟁의식,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무시와 오만한 마음을 갖는다. 셋째, 부정적인 사고가 습관화 되어,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게 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거친 말과 찡그린 표정을 하게 된다. 넷째,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자신의 노력에 의한 당연한 결과물로 생각하여, 타인에 대해 감사해하는 마음이 없다.

내가 생각해본 이유가 맞는지 틀리는지 또는 나만 도시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섬에 계시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생활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지수가 물질의 풍부함과는 별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소욕지족(小欲知足)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 적은 것, 지금 현재에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해하고 감사해 할 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한테 없는 것에 끊임없이 욕심 부리고,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해 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대하고, 불평, 불만이 없는 표정으로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바로 오늘부터 노력해 볼일이다.

엄 재 두 (경상남도청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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