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남성들이 즐비한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들 사이에서 때 아닌 ‘아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정부의 영유아 건강검진 확대 실시 방침 때문이다. 사업 시행 이후 주로 소아과 의원에서 실시하던 것을(물론 수년 전부터 이미 사업을 시작한 보건소들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지자체마다 보건소에서까지 확대 시행하려 하고 있다. 출발점은 모르겠으나 여러 도청마다 보건소로 사업을 시행하라고 끊임없이 압박하는 것을 보면 꽤나 높은 곳에서 지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하다 보니 가장 앞에서 사업을 담당하게 될 공보의들의 의지나 역량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 11월 ‘영유아 건강증진을 도모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위해’라는 야심찬 목표로 무료 영유아 건강검진이 시행되었다. 물론 보호자들에게는 무료지만 지정기관에는 저렴한(?) 금액이 보상된다. 시행 이후 많은 소아과 의원들에서 참여하였는데 보상이 적다 보니 검진에 대한 질이 담보되지 않고 이로 인해 부모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검진상에서 잠복고환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한 의원이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업 지정을 취소하려는 소아과 의원이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가 불만이 늘고 있는 이런 와중에 제도보완 대신 보건소로 검진 사업을 확대하려 하는 것을 보면 필자는 끝장토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이라 함은 만 6세 미만의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검진기관으로 지정된 인근 병의원 및 보건기관에서 영유아 건강검진 7회, 구강검진 3회를 실시하는 것이다. 검진 항목은 각 월령에 특화된 문진(시각·청각 문진 포함)과 진찰, 신체계측(신장·체중·두위), 2∼3종의 건강교육과 발달평가 및 상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영유아의 총체적인 발달 단계를 살펴보고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영유아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있는 소아과 전문의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와 실습 때의 경험이 전부일 수 있는 일반의나 타과 전문의들에게 영유아 건강검진을 강요하는 것은 새로운 과제를 넘어선 위협일 수 있다.

의사라면 누구나 가장 다루기 어렵고 겁이 나는 환자가 6세 미만의 영유아란 것을 느낄 것이다. 보건기관에서 경험하는 만성질환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라는 식상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영유아의 가벼운 감기나 복통 정도는 의사 자격증만으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영유아 건강검진이란 ‘영유아의 총체적인 발달 단계’를 살피는 것이다. 총체적인 이라는 말속에 어마어마한 부담과 책임을 숨겨 놓았다는 것이 이번 잠복고환 소송에서 여실히 들어나지 않았는가? 사정이 이러한데 사업을 시행할 공보의들의 역량을 따지지 않고 강행한다는 것은 공보의들을 전장에 내밀고 정부는 뒤에서 생색내겠다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이미 대한민국은 복지라는 이름하에 단돈 500원이면 진료를 보는 무상의료의 시대에 진입했다. 수많은 보건기관들이 의사에게 진료를 보는 곳이 아닌 싸게 처방전이나 발급 받는 곳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의사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민간기관에서 기피하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보건기관으로 아니 공보의들에게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보건기관이 의료복지라는 미명하에 능력과 권한을 뛰어넘는 일들을 확대, 재생산 해가는 것을 언제까지 묵인하고 있어야 하는가? 단언컨대 이런 식의 예산낭비, 보여주기, 밀어부치기식 사업 진행은 수년 내에 각종 비판과 비난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문 영 선 <전남 고흥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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