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용산전자상가에서 휴대폰 외장 배터리를 교환했다. 원래 배터리 용량대로라면 6시간 충전 후에 휴대폰을 2번 이상 꽉 차게 충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6시간을 충전해도, 8~10시간을 충전해도 휴대폰을 반정도 충전하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이었다.

주말에 서울에서 보령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2시간 40분이 걸린다. 그 동안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 금방 방전되기 때문에 일부러 산 것인데, 2~3번 휴대폰이 꺼지자 짜증이 났다. 구입했던 매장을 찾아갔더니 주인아저씨가 흔쾌히 새 것으로 교환해 주었다. 일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동안 난감했던 것이 화가나서 아저씨에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이런 이상이 자주 있는 것인가요? 또 그러면 어떡하죠? 그리고 기계가 왜 이런 건가요?” 그러자 아저씨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세상에 100%가 어딨습니까. 이상있으시면 불편하시겠지만 다시 찾아오세요.”

우리 보건소에서는 간단한 성병검사를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젊은 환자가 찾아와서 성병검사를 하였다. 환자분이 너무 불안해 하시고 이것 저것 물어보시길래 오랜 시간 상담을 했다. 다음 날 결과가 나와서 ‘음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 환자가 불안해 하면서 말하였다. 그럼 나는 괜찮은 것이냐, 혹시 병이 있으면 어떡할 거냐, 100% 확실한 것이냐. 그래서 “일단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것이다. 걱정되는 것이 있으면 큰 병원에는 더 정밀한 검사가 있으니 거기서 다시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환자분이 다시 큰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100%냐고 물어서 “세상에 100% 확실한 검사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환자가 벌컥 화를 냈다. 왜 확실한 대답도 못해주면서 자꾸 이것저것 하라고 하냐고. 100%가 아닌 검사를 도대체 뭐하러 하냐고.

다른 환자분은 시내에 있는 특정 내과병원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문다. 그 돌팔이 놈한테는 절대 안 가겠다고. 이유인즉슨 옛날에 당신 어머니가 체해서 구토하고, 미식거려서 그 병원에 갔는데 거기 선생님이 임신이라고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안타깝다. 100% 확실한 검사 결과, 진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과서에 있는 것처럼(교과서에서도 확률로 나오지만) ‘미열+체중감소+만성기침+피 섞인 객담 = 결핵’ 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의사는 신이 아니다. 의학 역시 수학이 아니다. 진료의 목적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응급하게 처리해야 할 질병을 감별하고, 가장 가능성이 큰 진단을 내려서 1차 치료, 2차 치료를 하는 것이다. 의사들이 옛날에 환자들에게 신처럼 군림했다면 반성해야 한다. 이미 의사들의 권위는 떨어져서 의사들은 땅으로 내려왔다. 이제는 환자들이 의사들을 함께 병을 치료해 나갈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의사들은 가능성 높은 진단명을 제시해 주고, 필요한 검사를 추천해주고, 1차 치료를 하고 경과를 보는 훌륭한 파트너이다. 의사들에게 신과 같은 능력을 요구했다가 요구를 이행하지 못할 시에 (확실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치료를 했는데도 증상이 호전이 없다거나) 인간이하로 대접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용산으로 교환을 받으러 갔을 때 나도 여러가지를 할 수 있었다. 기계를 뭐 이따위로 만들었냐고 집어 던질 수도 있고, 이 따위 물건을 파냐고 주인아저씨의 멱살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왜? 세상에 100%는 없으니까. 결함이 있으면 고치면 되고, 고쳐서 안되면 교환을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100%를 요구만 한다면 누가 물건을 만들겠는가. 환자와 의사가 서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파트너로서 나아가는 풍토를 꿈꾼다.

박 지 훈
보령시보건소 공보의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