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길 부분

이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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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화냥년처럼 달뜬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달려와 요염하게 안긴다
불콰해진 花色에 취해
그리운 이름 하나 나직히 불러본다
추억의 그늘에 얹히는 분분한 낙화
이승을 건너가는 춤사위
눈부신 봄날이 곤곤히 드러눕는 벚꽃길
우리는 어디서 만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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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구: 부산대 의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이병구 내과 의원.

시문학 등단(1986).

달뜨다: 마음이 가라 앉지 않고 들썽들썽하다. 요염하다: 사람을 호릴만큼 아리땁다. 호리다: 매력으로 남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다. 아리땁다: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불콰하다: 술기운은 따위나 혈기가 좋아 얼굴이 불그레하다. 色: 빛깔, 형상과 색채를 가지고 직관적 감각으로 인식되는 모든 존재 또는 물질. 그러니까, 色에 취하다는 말은 물질이나 물체의 겉에 빠진다는 것이다. 물질이나 물체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흩날려 떨어지는 허허(虛虛)로운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주는 모든 사물은 이미 그전의 것과 똑같은 사물이 아니라 그것은 이름을 받음으로써 벌써 순수를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한 사르트르(Sartre, 1905~1980)의 지적처럼 무엇이고 가리켜 이야기하면 본디 순수의미는 어차피 훼손되므로 정확한 말이 바로 정확한 내용인 것은 항상 아니다. 말로 표현된 모든 것은 이미 변질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떠한 말도 완벽하게 사물이나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 대상이 풀어헤치고 안기는 화냥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어차피 한 방향, 한 곳으로 가야할 유한한 존재임을 알므로 꽃길을 걸을 뿐이다. 본질을 알수 없으니 이름을 부를 뿐이다. 내가 의도하여 만들거나 찾아 구한 생명과 삶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당신이 은총으로 주신 선물임을 확인할 따름이다.
곤곤(滾滾)하다: 많은 물이 넘실넘실 흘러 세차다. 나 이전의 수많은 발길이 나 이후의 끝없는 걸음이 지나갔고 지나갈 길. 그 길에 지천으로 널려 쌓인 무생명(無生命)의 흐름을 보고 밟는다. 나 또한 우리 또한 이처럼 역시 쓸려 흘러간다.
벚꽃 흐드러져 흩날리는 길의 한 귀퉁이에선 세상 모든 이름 잊고 그저 걷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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