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ㅣ저 자ㅣ 빅또르 위고 (송면 역)
ㅣ출판사ㅣ동서문화사
ㅣ발행일ㅣ2002.8.31
ㅣ페이지ㅣ3000쪽

ㅣ정 가ㅣ

48,000원 (전6권 세트)

| 출판사 서평 | 사회의 질곡을 딛고 스스로 속죄하여 다시 태어나는 영혼의 위대한 서사로망. 프랑스 대문호 빅또르 위고의 대표작으로서,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불쌍한 사람들Les miserables의 군상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낭만주의 사회소설의 걸작. 촛대를 훔친 자신을 용서한 주교에게서 영혼의 갱생을 얻은 출감수 장발장의 기구한 삶 속에서 독자 또한 영적인 정화를 경험하게 된다. 유그판 완역본으로 비아르의 삽화 300점이 수록되어 있다. (전 6권)


아직도 우리 주위엔 숨은 장발장 많아

최동주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치과교수

레미제라블. 18세기 프랑스라는 사회를 거대한 서사시로 때로는 섬세한 서정시로 그려내는 작가의 필력 앞에 오만했던 21세기의 한 인간은 완전히 포로가 된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책 속에서 꿈틀거리며 나와서 마치 그 사람이 곁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표현력, 긴박한 워털루 전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마치 전쟁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는 그 전쟁의 결국을 관조하는 시각으로 유도 하면서 인류사의 필연적인 인과 관계라는 결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 그리고 쟝발쟝..

미리엘 신부의 희생적인 삶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고 이는 쟝발쟝이라는 인물에게 대물림 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덕이 베풀어진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결합을 이루어 내는 것도 그 중의 하나.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한다”는 진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인생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영웅 쟝발쟝을 그렇게도 괴롭히는 쟈베르 형사는 어떠한가. 사실 그 누가 감히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누가 옳고 누가 잘못된 것 인가에 대한 답이 없이 작가는 태연하게 사회,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대한 해결사를 등장 시킨다. 그리고 그 해결사의 행동대장격인 쟝발쟝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 나간다.

온갖 박해와 오해와 고난 속에서도 꿋꿋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 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감동 자체라고나 할까! 한 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전력을 다해 살아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합리적인 논리를 만들어 가던 나에게 심한 도전을 느끼기도 하였다.

건강 사회, 구성원 조화서 시작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부분들 중에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더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마치 18세기의 프랑스가 아닌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 같아서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동대문 지역은 서울에서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근처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한 반에 50% 정도가 결손가정인 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잘난(?) 부모 덕분에 한 번도 학비 걱정, 밥 걱정, 노는 걱정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한걸음만 옆으로 돌려서 다른 세계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기 어려운 삶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땅에 아이들이 먹다 버린 컵떡볶이를 집어 들고 거기에 묻어있는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쓸어 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수년이 지난 지금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남보다 잘 살 수 있고 남보다 큰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잘난 부모님 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한 것을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배반의 행위이다. 천국에서는 남을 섬기는 자가 큰 자이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은 그것을 통해서 남의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남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각양각색의 은사들을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레미제라블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함께 얽히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정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예를 들면 미리엘 신부, 쟝발쟝, 데나트르) 이들 중 누가 옳고 누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저자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다. 단지 어떠한 상황에 따라서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공존 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인생의 항로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다양한 성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그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그리고 그 열쇠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능력 있고 부유한 사람이 쥐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

환자 위하는 의사가 존경 받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가진 자들이요 능력이 있는 자들이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일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마치 환자가 의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의사는 환자를 섬기고 돌봐 주어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의사가 환자 위에 군림해서 행동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만일 환자를 진정으로 보살피고 환자를 위한 진료를 해 나갈 수 있는 의사들이라면 마땅히 존경을 받을 것이요 그 사람을 향해서 돌을 던질 어리석은 환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국이 대 공황을 겪었을 때나, 최근의 경제난을 겪은 시점이 바로, 미국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일어났을 때라는 분석을 한 학자가 있다.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 사회든지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줄어드는 순간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풍조가 어느 사이엔가 마치 진리인양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 삼성그룹이 있다면 인도에는 타타 그룹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100년이 된 타타 그룹은 인도 사람들로부터 매우 존경을 받는 회사라는 것이 우리네와는 다른 것 같다.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일구어 온 란타 타타 회장은 툭하면 부정과 비리로 구속되고 법의 심판대 앞에 서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삶을 산 인물이다. 거대한 그룹의 회장이지만 검소한 삶을 지켜가는 그를 보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 지는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아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님비현상에 사로잡혀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에도 쟝발쟝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비었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전혀 없다면 이미 세상은 종말을 보고 말았을 것이리라. 이는 아직 우리 주위에 숨어있는 쟝발쟝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레미제라블을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읽으려고 손에 들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전에 읽은 레미제라블의 내용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책의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잔잔하면서도 내 가슴 속에 깊숙이 파고든 그 감동을 쉽게 내려놓기가 싫은가보다. 그리고 다짐 해 본다.

5년이 지난 뒤 나는 다시 한 번 레미제라블에 도전 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새롭게 다가올 이 책의 감동을 기대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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