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고통에 대하여 24

윤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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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 주전자와 같다

물 한 주전자 끓이는데 드는 시간

맨 얼굴 드러낸 채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한 마리 짐승이다

그대가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치유되는 증거이다

하나님과 그대가 만나는

창문이다

한없이 단조로운

회색 시간에

스토브에 지핀

뜨거운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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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경북의대, 대학원. 계명의대 산부인과 교수 역임.
시문학 등단(1984).

하나, 뜨거운 물은 끓여야 한다. 열탕 소독을 하기 위해서도 끓여야 한다. 끓인다는 물기가 있는 음식을 불에 얹어 뜨겁게 하는 것이다. 섭씨 100도가 되어야 한다. 열 받아 속 끓이고 애 끓이는 일과 다름없다. 아래위가 뒤집어지고 정해진 공간과 시간이 숨 막혀 이리저리 벼에 부딪치며 어쩔 줄을 몰라 해도 주전자 속의 물은 주전자 속에서 끓어야 한다. 부글부글 뒤집어져야 한다. 이성을 잃고 마치 감정만 남은 짐승처럼 주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과 현상이 죄다 통증으로 가득하다.
둘, 비등(沸騰)의 동통성(疼痛性) 혼란을 거치지 않고 끓는 물이 될 수 없다. 소독되어 질 수 없다. 그렇다 아픔 없는 치유는 없다. 사전적 풀이로 치유(治癒)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또는 그것을 주는 능력을 가진 존재의 속성이다. 치료의 좁은 의미에 심리적 안정을 보탠 것이 치유라면 그건 하나님의 영역만은 아니다. 나도 독하게 끓어 본 적이 이 있고, 그 비등(沸騰) 후유증으로 흐릿한 인내와 겸손을 상처를 갖고 있다. 물론 그것이 진정하고 온전한 치유일 수 없으므로 완전한 치유를 바라볼 수 있는 창(窓) 하나 지니고 다닌다.
셋, 삶은 길이와 관계없이 색깔과 온도로 구분되는가. 단조롭고 차거운 회색의 시간 사이사이 벌겋게 뜨거워지는 상처 내기의 동강들이 필요한 것인가. 그 색깔과 그 열기는 상처 없음의 값을 매기기 위한 표식 작업인가. 상처가 상처를 치유하는 이 좁은 진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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