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필자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영업사원 몇 명을 본 적이 있다. 삶의 토대가 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뽑힌 듯한 기분이랬다. 밤에 잠도 잘 못 이룬다 했다. 5년 넘게 형 동생 하면서 친자식보다 더 친하다고 생각했던 의사로부터 ‘거래 제품을 교체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물어보니, 그 영업사원 매출의 50%는 한 명의 의사로부터 발생했었다. 가족관계는 물론, 가족도 모르는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사이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함께 여행도 자주 다닌 사이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서로 충분히 ‘신뢰’ 한 사이라 믿었다. 그런데, 어떻게 쌓아온 친분이고 관계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수 있단 말인가?

관계란 처음 맺어지기는 어렵지만, 한 번 맺어지면 떨어지기도 어려운 것이 관계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코비 박사의 아들 스티븐 M R 코비는 아버지의 연구를 ‘신뢰의 속도’라는 책으로 정리하여 출판한 적이 있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는 평소 관계(Relationship)을 정의할 때, ‘서로 손해 볼 용의’라고 강의 한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깊은 관계인데 서로 희생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부부 사이도 역시 금전관계를 크게 따지지 않는다. 시장에서 1500원어치 콩나물을 사면서도 조금 더 깎아 달라는 아내는 집안일을 많이 했다고 월급을 3만원 더 달라는 식으로 남편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형제간에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람이 돈 100만원만 빌려달라고 하면 이것저것 따지겠지만, 친형제간이라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필자는 그 상처받은 영업사원들에게 묻는다. “형 동생 하며, 없이는 못살 것 같던 그 의사와의 관계가 유지되고 깊어진 이유가 무엇인 것 같은가?” 필자는 또 묻는다. “당신은 그 의사와 왜 그렇게 친하게 지냈느냐. 당신이 그 의사를 그렇게 좋아한 이유는 무엇이었냐?”고.

관계란 거래를 초월하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는 친구를 돈이 된다고 만나거나, 돈이 안 된다고 안 만나지 않는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거래가 끊긴다고 관계는 끊어지지 않으며, 그 동안의 거래는 관계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의사결정은 두 가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명분과 이해관계이다. 영업사원의 본분은 회사를 대표하여 지역 의사들에게 올바른 의학정보를 제공하여 처방을 돕는 역할이다. 의사 입장에서도 영업사원의 정확한 제약 정보는 처방에 도움이 된다. 이는 이해관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갑자기 떠나는 의사야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영업사원은 해당 의사에게 만남과 처방의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를 중시하는 영업사원이라면 거래유무에 관계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영업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관계를 빌미로 의사에게 분명한 처방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건 아닌지…. 행여 방심했던 자신을 돌아볼 때이다.

떠나간 님을 원망한들 무엇 하겠는가? 문제의 원인은 오직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원우 디씨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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