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2000년도 이후 대한만국 의사들은 한정된 의료자원과 여러 가지 정의롭지 못한 의료정책으로 애를 태워왔다. 의사로서 살아가면서 겪어야하는 억울한 의료 환경과 비난을 받을 때마다 많이 답답했다. 특히나 진료현장에서 접하는 윤리적인 문제들(프로포폴 남용, 리베이트, 성범죄)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의사들이 누려왔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힘든 가시밭길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둡고 험난한 길이 의사들의 앞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처지가 되었는지 마음이 답답하고 분노만 가득하다. 의사들은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의사들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도록 내몰렸다고 항변한다. 우리를 좀 이해 해 달라고 소리쳐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도대체 대한민국 의사들에게는 희망은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혹 모르고 지내거나 채워야할 빈 공간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의사답게 환자를 진료하고 인정받고 살 수 있을까? 깊은 고민 끝에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어두움을 밝혀줄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다.

남을 이해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고, 그 원인에 따라 부족한 것들을 고쳐가야 한다. 필자는 그 해답을 ‘의료윤리’에서 찾았다. 정의롭지 못한 의료제도를 개혁하고 잠자는 동료 의사들을 깨우는 개혁의 열쇠가 의료윤리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의사들에게 바라는 것은 철저한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가진 윤리적인 의사상을 원하고 있다. 의사들이 채워야할 빈 공간을 국민들은 알고 있는데 의사들만 모르고 있었다. 내가 변하지 않고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료윤리의 중요성을 동료들에게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2010년 9월 ‘의료윤리연구회’를 만들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료 의사들에게 의료윤리라는 희망의 불씨를 전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던 중 의학신문사로부터 의료윤리에 관한 칼럼 집필 제의를 받았다. 동료들과 교감할 수 있는 날개를 단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명진원장의 의료와 윤리’ 칼럼이 2년이 흘러 100번째 글에 이르게 되었다.

이비인후과 개원의로서 의료윤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 사람이 겁도 없이 매주 의료윤리에 관한 글을 써왔다. 지난 2년의 시간이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만 배운 것이 많기에 감사할 뿐이다. 일천한 지식과 사고의 빈곤을 뼈저리게 느끼며 책을 사보고 기사를 검색하고 여러 분들에게 자문을 들어가며 달려왔던 것 같다. 한 주 한 주 올린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눠가면서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윤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동료 의사들의 의식과 시선이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동료들이 생소한 윤리관련 용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반갑고 보람을 느꼈다. 작은 소리지만 큰 파장으로 의료계와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희망의 불씨가 조용히 번져가고 있었다.

글을 써가며 전문가의 자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진료수가가 싸구려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윤리의식이나 진료행위까지 싸구려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비록 남들보다 좀 천천히 벌고 덜 벌더라도 깨끗하게 벌고 자부심을 갖고 의사로서 살아야겠다. 좀 덜 가진 의사라는 판단은 감수할 수 있지만 비윤리적인 의사라는 판단을 받기는 싫기 때문이다. 윤리는 내가 먼저 지키고 붙잡고 나가게 되면 선명한 힘이 만들어지고 존경과 권익이 보호되지만, 남에게 의해 강요될 때에는 엄청난 비난과 수모 그리고 경제적 손실이 따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부족한 필자에게 좋은 기회를 준 의학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의료윤리라는 희망의 불씨를 가슴에 심어주시고 깨워주신 맹광호·이무상 교수님과 이윤성·안덕선 교수님, 박인숙 새누리당 국회의원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00편의 칼럼이 나오는 동안 매번 글을 교정해주고 힘이 되어준 문지호 원장께도 감사를 드린다. 이제 잠시 글을 쉬고 더 나은 글을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한다. 졸필을 사랑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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