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medicus

김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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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텍스트는
피와 살과 뼈로만 기록되어 있다
도제 시스템으로 단련되어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세균을 혐오하지만
오직 세균의 힘으로만 부패한다
한 번 피맛을 본 후론
달콤한 적포도주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바스락거리는 뼈맛을 느끼고 나선
부드러운 육질을 거부한다
두개골은 갑각류의 등딱지보다 단단하고
매끈한 피부는 사나운 짐승의 가죽보다 질기다
박쥐처럼 초음파를 사용하고
동굴 같은 내시경을 들여다보지만
몸 속 깊은 슬픔의 발원지를 찾을 수 없다
만약 내게 투시경이 주어진다면
옷 속에 감추어진 외부성기가 아니라
욕망을 감추어둔 내면의 장기를 훑고 싶다
캡슐 내시경처럼
입에서 항문까지 구불구불한 텍스트를
구석구석 밑줄 긋고 싶다
형광펜처럼 빛나는 고독의 기시부를 찾고 싶다
오진과 오독 사이에서 또 하루를 탕진하였다
부패와 발효 사이의 아찔한 칼날 위에 선
오늘도
온통 오류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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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전남의대 졸, 김연종내과원장.
문학과 경계 등단(2004).

나날의 삶은 자서전이다. 글씨로 쓰여 있지 않을 뿐이다. 자서전 속의 텍스트는 바로 나의 삶이다. 국어사전에는 의사를 ‘서양식 시설과 의료법에 의하여 병의 진찰․치료를 업으로 하는 사람.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면허를 얻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의사를 일컫는 영어 닥터(doctor)란 말의 어원은 docere로서 ‘가르친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건강과 질병에 관해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이 의사의 근본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 의사. 그 뜻풀이야 어떻든 우리의 피부에서 속마음까지 어느 곳의 건강과 질병도 의사와 연관 지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한 까닭에, 내 피부에 난 종기를 몇 번씩이고 만져보면 만져볼수록 실제보다 크게만 느껴지고, 내시경을 시술하면서 보이는 점막이며 용종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착각되어지는 일상들을 콘텐츠로 담으면 의사, 호모 메디쿠스의 자서전이다. 부패와 발효의 경계에서 건강과 질병을 감별해야하는 일은 피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내고 뼈를 골라내며 오늘의 칼날 위에 서 있음이다. 흰 가운을 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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