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전문직(profession)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등을 말한다. 사회는 이들에게 전문직이란 명예와 특권을 인정해 주고 있다. 타율이 아닌 자율로 전문성과 윤리 수준을 유지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사의 경우 면허라는 특별한 제도를 통해 전문직을 인정해 주고 있다. 대신 의사는 사회에 해가 되지 않도록 의사집단이 자율적으로 전문지식과 술기를 유지하고 의사로서 갖추어야할 덕목과 소양을 지켜가도록 노력할 책무를 갖는다. 그러기에 전문가 자율정화(self- regulation, professional regulation)는 전문직의 생명과도 같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 행위이다.

의사단체가 자율정화를 통해 전문직업성을 잘 유지 할 때 사회와 환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된다. 이러한 사회와의 약속에 대해 한국의사들은 너무나 무지했다. 면허만 따면 그 누구도 자신을 간섭하지 못한다고 자만에 빠져있었다. 비리를 저지른 동료들을 과감하게 징계하고 솎아내지 못하고 제식구 감싸기에 열을 올린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사회는 의사들이 사회와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법을 만들어 의사를 다스리고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의사는 더 이상 전문직이라는 명칭을 가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전문가로서 자율정화의 기능을 하루 속히 갖추어야 할 상황이다.

이러한 자율정화 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조성되어야 할 제도적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 전문직의 자율정화를 위해서는 징계에 앞서 전문가들이 지켜야 할 덕목과 책무가 담긴 기준을 정하고 행정력을 가진 자율평가 기구가 마련되어야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먼저 대한민국 의사들이 전문직으로서 지켜가야 할 구체적인 윤리지침 등을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의사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과 덕목 등을 정리한 가이드라인(GMP Good Medical practice)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명 KGMP(Korean Good Medical practice)가 만들어지고, KGMP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지도층과 집행부가 중점 추진사업으로 책정하여 지속성있게 진행되도록 KGMP개발 연구기구를 만들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동료평가(Peer review)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문직은 전문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전문직의 잘못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찾아내기 힘든 속성이 있다. 동료 평가를 통해 전문지식이나 술기, 전문직업성 중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고, 고도의 전문가적 수준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잘못된 행위나 비윤리적 진료로 징계대상이 되는 것을 막아주는 사전예방 효과가 있다. 처벌만으로는 전문직업성을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평가의 대상은 개원의, 대학교수, 연구직 등 직역별 개인평가와 의과대학평가로 나누어 진행되어야 한다. 먼저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일명 의평원)의 평가에 대한 권위를 정부가 조속히 인정해야 한다. 의평원의 평가에서 부적격 판단을 받으면 국가고시자격을 주지 않거나 신입생 인원 축소, 폐교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서남의대와 관동의대 문제들은 의평원의 전문가 동료평가를 거부하고 외면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전문직의 눈으로 보거나 정치인의 눈으로는 전혀 볼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전문가 단체(성직자, 법률가, 의사)가 바로 서면 사회질서가 바로 서게 되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는 토대가 된다. 미래를 준비하는 개혁마인드가 의사단체와 정부, 교육계, 정치권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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