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대한민국 의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은 의학지식 수준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의사로서 인정받아야 할 전문가의 권위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것 같다. 바람직한 전문가의 권위가 무너질 때 사회 질서가 위협받게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대로 머물다가는 대한민국 의사들은 전문가적 권위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사회로부터 의사의 전문가적 권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어느 집단이든지 권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는 내부적인 합의의 문제이며, 두 번째는 대외적인 정당성의 문제이다. 내부적 신뢰확보와 외부적 신뢰 확보의 문제이다. 내부적 합의와 외부적 정당성 확보를 통해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전문가적 권위를 만들어 간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사들은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바로세우는 의료개혁 활동들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키워갔다.

먼저 이들은 내부결속을 위해 공동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의사들의 처방이나 치료를 직접 받지 않고도 병이 나을 수 있다고 광고를 하는 제약회사들과 약 판매 회사들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미국의사협회는 위원회를 만들어 의사의 전문성에 대항하는 세력을 제거하고, 굴복시켜가는 작업을 주도 했다. 이러한 공동의 목표는 회원들의 결속과 신뢰를 쌓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사들은 외부에 대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의과대학 교육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의과대학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의과대학의 질 향상과 교육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의과대학 입학기준 및 자격을 까다롭게 정했다. 의사면허시험의 합격기준과 수련과정을 어렵게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의사가 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두 번째로 정부와 함께 의사면허의 관리를 시작했다. 의사회원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의사윤리강령을 지속적으로 개정해가며 강력한 자정활동을 시작했다. 의사협회는 의사의 권익을 증진시키는 직능권익수호단체(trade-union) 성격의 활동과 회원들의 전문직업성을 유지하기 위한 윤리기준 제정 활동에 전념했다. 그리고 회원들의 감정을 훼손하고 단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원 징계나 집행은 외부(주면허 관리 위원회)로 분리시켜 버리는 정교한 개혁 작업에 성공한다. 의사로서 문제가 되는 회원들의 징계를 협회가 직접 하지 않고 외부 기관인 주면허관리위원회(지금의 ‘state medical board’)에 회부하여 집행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내부적으로는 회원의 단결을 유지하고 외부적으로는 공정성과 신뢰를 확보해 간 것이다.

세 번째로 의사협회는 대국민을 상대로 의사들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홍보 전략을 강력하게 구사했다. 의사의 진단 없이 약을 복용했을 때 발생된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를 약물복용 전후로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으로 제작하여 전국에 배포했다. 의사들의 수익과 전문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 받는데 유익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작업이 의사협회의 주된 작업 목표였다. 이러한 미국의사들의 활동을 연구하고 교훈을 얻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미국의사들은 전문가의 권위와 위상이 무너진 혼란과 좌절의 상태에서 전문직업성을 강화하는 많은 노력을 통해 사회의 존경과 전문가적 권위를 회복했다. 미국의사들의 의료개혁활동을 돌아볼 때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전문가로서 권위와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19세기에 와해직전까지 추락했던 미국의사협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전문가적 권위의 획득에 성공한 미국의 의료개혁 작업이 2013년 대한민국 의료계도 시작되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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