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의사가 갖추어야 할 3가지 요소는 전문 의학지식과 의학기술 그리고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이다. 전문직업성을 우리말로 쉽게 이해하자면 ‘의사다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의사다움이란 의사가 가지고 있거나 가져야만 하는 전문직에 적합한 자질과 행동양식을 말한다. 구체적 요소로 이타심(altruism), 책임감(accountability), 우월성(excellence), 의무(duty), 봉사정신(service), 명예(honor), 청렴성(integrity), 타인에 대한 존중(respect for others) 등이다.

의사들이 전문직업성이 결여되었을 때 의사답지 못하다는 판단을 받게 된다. 또한 외부로부터 전문직업성이 손상을 입을 때 의사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위협받게 된다. 그 결과 환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낙태금지, 독약처방금지, 동료의사 폄하금지 등을 포함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언은 의사들이 전문직업성을 지키기 위한 의료개혁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의료의 역사를 살펴 볼 때 파격적인 의료개혁 작업이 있을 때마다 의학은 발전해왔고, 환자들의 생명은 보호되어 왔다. 환자의 이익과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을 발견하여 제거하거나 개선하는 일이 바로 의료개혁이다. 부족한 의료재정을 늘릴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윤리교육을 통한 의사들의 윤리적 수준을 유지 발전시키고, 진료를 왜곡시키는 법이나 제도 등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직업성 강화를 통한 의료개혁 작업은 각 나라의 의사단체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의료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일까? 첫째, 국민의 지지와 힘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기적 사고와 권위, 편견과 무례함, 불의한 이익과 기득권을 과감히 벗어버리는 용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을 때, 겸손해 질 때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개혁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주체로서 인정받는다. 진정한 의료개혁의 힘은 의사들의 정직한 고백을 통해 탄생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자들만이 개혁을 이끌고 갈수 있다.

두 번째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노출시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을 보지 말고 문제를 보고 문제점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때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의사동료사이의 갈등일 수도 있고, 정부와의 갈등일 수도 있다. 정부와의 지나친 대립은 대화의 채널을 망가뜨린다고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해결은 정확한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사사로운 인간관계로는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대화 채널은 정확한 문제점을 공유한 후에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도 결코 늦지 않다. 이런 벽을 넘어설 용기가 없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나의 희생이 필요하다. 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자기희생이 따를 때는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총론엔 찬성하고 각론엔 반대’인 셈이다. 아무도 나를 대신하여 희생해주지 않는다. 내가 참여하고 희생해야 한다. 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임승차자(free-rider)들이다.

네 번째로, 의료개혁을 시작했다면 목표만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 개혁을 시작하면 곳곳에서 강한 저항이 시작된다. “다 맞는 말인데 그렇게 하면 아무도 안 따라온다. 다들 불만이다” 개혁은 방향과 목적이 바르게 잡혔다면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잠시 멈칫 하는 순간 개혁의 궤도는 탈선을 하고 만다.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전문직업성 바로 세우기를 통한 의료개혁 작업을 시작했다. 의사들이 들어내기 힘든 부분들을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의사의 역할(전문직업성)을 훼손하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제도들의 개선을 정부에게 요구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정의롭지 못한 인적 구성 문제 개선과 열악한 보험재정의 확보, 불합리한 심사규정 개정 등이다. 이제 한국 의사들도 정의로운 의료를 만들기 위해 변화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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