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ㅣ저 자ㅣ 계승범
ㅣ출판사ㅣ역사의아침
ㅣ발행일ㅣ2011. 12. 6
ㅣ페이지ㅣ304쪽

ㅣ정 가ㅣ

14,000원

| 출판사 서평 | 선비는 개인으로서는 전인격체의 이상적인 인간상이었으며, 사회적으로는 독점적 지배층이자 유일한 지식인 계층이었고, 정치적으로는 500년 조선왕조의 오랜 실세들이자 주인공들이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사안만을 드러내어 마치 그것이 선비의 전체 이미지인 것처럼 단정하고 평가해버리면, 선비의 실체를 설명하는 데에는 과장과 왜곡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저자는 선비들이 중요시한 덕목, 유교 이론, 그들의 생활 모습, 그들이 중요시한 가치관, 그들에게 주어진 지위와 직책에 대한 임무 수행 능력, 그리고 그들이 지배한 조선의 실상 등을 종합해 선비를 분석하고 평가한다.

조선시대 선비는 학자이며 권력층

노비·노동력 착취 '사대주의' 비판
선비는 교육 모델이 될 수 없다!

최수전 교수

상계백병원 호흡기내과

어느 나라 교육이든지 그 나라가 교육을 통해서 양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은 대개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교육이 신사(젠틀맨)를 양성하는 것이라든가, 유럽과 미국의 교육이 양식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든가 하는 어는 정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모델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 건국 이래 ‘홍익인간’을 교육의 목표로 지내왔다. 실제는 ‘선비’형 인간을 장려하여온 다양한 증거들이 있다. 선비는 실제로는 조선시대 선비를 모델로 말하는데 조선 선비의 실제적인 모습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고 살펴본 명저가 바로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이다.

먼저 저자는 선비에 대한 정의로 사전에 나오는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오히려 역사적인 의미로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유교적 지식과 윤리로 무장하고 지배층을 형성한 최고 엘리트 집단, 곧 ‘사대부’를 칭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정의한 다음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선비는 중국의 사대부와는 달리 학자이면서 동시에 권력층이었다. 문제는 조선 선비들이 말한 덕목중에 가장 중요한 ‘유교적 의리’란 최종 대상이 조선의 군주인 임금이 아니었고, 중국의 황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이는 조선 건국의 업보인 ‘사대주의’에 있다는 점은 희극적인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선비들이 청빈과 안빈낙도를 이상으로 생각하였지만 실제로는 조선 농토의 대지주가 바로 사대부이었으며, 농토의 노동력으로 노비/소작농을 혹사하였다. 대표적인 사대부인 퇴계이황의 경우 소유 노비가 367명이었고, 논은 1166마지기, 밭은 1787마지기였던 점으로 본다면 이황의 소유 농지는 논과 밭이 각각 17만평 이상으로 약 34만평의 농지를 보유한 셈이다.

또한 지금 인권에 대한 잣대로 본다면 노예제도인 노비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는데 조선 당시 사대부들은 노비제도를 예의와 염치를 배양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옹호하였다. 조선 사대부들은 부모 중 한명이라도 노비이면 아이들이 노비가 되어야 한다는 종부 종모법을 ‘경국대전’에 명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국가 세수가 감소하는 현실을 초래하였다. 심지어 실학자인 정약용 조차도 1801년의 공노비 해방을 비판하였으며, 18세기 중반까지도 조선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노비였으며, 서울 사대문 안의 경우 약 50%에 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시 돌아가서 얘기한다면 대한민국의 교육목표는 ‘홍익인간 제세이화’이다. 홍익인간의 모델은 고조선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내려오는 선인(仙人), 조의 선인, 재가화상 등 스스로 도를 닦고 깨달아 민중을 위한다는 개념이지만 좀 더 명확한 개념 정립과 논의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조선의 선비는 대한민국 교육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이다.

이 책은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계승범이 2011년 11월 300일에 역사의 아침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11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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