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중심 사탕수수 즙으로 제조
16~17C 해적 승무원이 마시던 술에서 유래

럼이란 술은 왠지 우리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술이다. 그 이름이 매우 간명하고 기억하기 좋은 탓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애주가들에게는 ‘캡틴큐’라는 술에 대한 추억이 럼에 대한 막연한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갭틴큐라는 술은 1980년대 초 롯데주조란 회사(지금의 롯데칠성음료)에서 만든 것으로 이른바 기타재제주(其他再製酒)에 속하는 술이었다. 기타재제주는 1990년 주세법의 개정으로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위스키ㆍ브랜디ㆍ럼ㆍ보드카 등의 원액에 값싼 알코올을 섞어 만든 싸구려 술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100% 진짜(?) 양주를 일반 국민이 접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원액 함량이 제품 전체 알코올의 20% 이상이 되면 정식 증류주로 분류되어 주세가 높아졌기 때문에, 원액 20% 이하를 함유하는 기타재제주가 탄생하게 되었고 캡틴큐는 이의 대표주자였다.

캡틴큐는 1년산 럼이 조금 들어갔을 뿐의 하급품이었지만 당시 젊은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카리브해와 해적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새로운 외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어울러져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애꾸눈 선장으로 상징되던 캡틴큐의 남성적 이미지는 어떻게 표현하면 당시 하나의 청년문화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캡틴큐는 과거의 인기를 뒤로 한 채 ‘일반증류주’라는 이름으로 계속 생산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주정에 럼 향을 혼합한 제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 술은 가짜 양주제조의 주된 재료로서 종종 매스컴에 소개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이미지의 럼은 최근에 와서 ‘카리브해의 해적’이란 히트 영화에 등장하여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가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불타고 있는 럼주 통들을 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럼이란 술은 카리브해와 인연을 맺기 전에 그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의 여정에 따라 먼 길을 우회하여야 하였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사탕수수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지리적 경로를 따라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를 경유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소개되었다. 이 사탕수수가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에 따라 자연스럽게 천혜의 경작 조건을 가진 카리브해 연안에 전파된 것이다. 럼이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지만 당즙(molasses)을 그냥 두면 자연히 발효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에 의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신대륙에서 기대했던 것만큼 금을 발견하지 못하였던 스페인 정복자들은 럼이란 술을 만들어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사탕수수는 한편으로는 설탕을 제공해 주고 또 그 부산물인 즙으로는 럼을 만들 수 있는 이중 경제효과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흑인 노예들이 필요하게 되어 아프리카로 부터의 노예무역이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럼이란 술이 해적의 이미지와 깊이 연결된 것은 16~17세기에 성행하였던 사략선(私掠船) 제도와 관련이 있다. 사략선이란 승무원은 민간인이지만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무장한 선박을 일컫는 말로 당시 부족한 해군력을 보충하기 위해 유럽에서 성행하던 제도였다.
특히 카리브해 연안에서는 영국과 스페인이 식민지 확보 경쟁을 벌리면서 유사시 교전상대국의 배를 약탈해도 좋다는 국왕의 사략 특허장을 무기로 이들 사략선에 의한 해적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졌다. 당시 카리브해 일대에는 스페인의 영토가 많았으므로 스페인 선박들이 주된 약탈 대상이 되었으며, 기동력 빠른 영국계 해적선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이들 해적 승무원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 바로 럼이었다. 해적과 럼에 연관된 이야기는 유명한 스티븐슨의 유명한 소설 ‘보물섬’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정규 영국 해군이 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655년 영국군이 자마이카를 점령하면서 럼의 대량 공급이 가능해지자, 승무원들에게 그때까지 지급되던 프랑스 브랜디 대신에 럼을 지급하면서부터 시작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훗날 영국의 넬슨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사망한 뒤 부패를 막기 위해 럼으로 채워진 관에 운반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럼은 많은 국가에서 생산되고 있고 각 나라마다 제조 기준과 명명 방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분류 방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증류 후 별다른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는 Light Rum과 숙성 과정을 거치는 Gold Rum, Dark Rum 등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먼저 ①Light Rum은 White Rum, Silver Rum 등으로도 불리는데 칵테일의 재료로서 주로 사용된다. 푸에르토리코가 주산지이다. 그리고 ②Gold Rum의 색깔은 나무통 숙성에서 만들어지는데 주로 미국 버번위스키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을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③Dark Rum은 역시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나 그 기간이 장기인 제품으로 짙은 색깔과 깊은 맛을 보인다. 주로 자마이카, 아이티 등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이밖에도 럼에는 최고급품을 뜻하는 프리미엄 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Overproof Rum, 과일향을 가미한 Flavored Rum 등의 종류들이 있다.
자, 이런 정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잔의 럼 속에서 저 멀리 카리브해의 바닷바람을 느낄 수가 있다면 또 하나의 작은 개인 서사시가 만들어 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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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럼 생산 회사로 유명한 바카르디사의 제품 미니어처들.
▲사진2
럼주의 고급화를 지향하며 병 모양도 산뜻하게 출시한 토미 바하마사의 제품 미니어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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