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글래스’ 기술 경쟁, 수술방 풍경 바꾼다

3D 시각화·제스처 컨트롤, 핸즈프리 환경 및 더 넓고 정확한 시야 제공

2025-11-26     오인규 기자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스마트폰이 인류의 손끝을 혁신했다면, 차세대 디바이스인 ‘스마트 글래스’는 의료진의 ‘눈’을 확장하며 수술방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를 활용해 올해 메타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 기술이 임상 현장과 결합하며 ‘디지털 수술(Digital Surgery)’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최근 해외시장리포트를 통해 메타(Meta)가 공개한 ‘Meta Ray-Ban Display’와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 Pro)’ 등으로 촉발된 스마트 글래스 기술 경쟁은 소비자 제품 영역을 넘어 또 다른 가능성을 열며 확산되는 추세라고 밝혔다.

현실과 가상 잇는 ‘스페이셜 인터페이스’, 의료 현장 혁신

AR 글라스를 활용한 수술 보조 시스템 예시

의료 현장, 특히 멸균과 양손 사용이 필수적인 수술실에서 스마트 글래스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과거의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가 무겁고 시야가 차단돼 의료진이 착용하기 어려웠다면, 최신 스마트 글래스는 광도파관 기술을 적용해 안경처럼 투명하고 가벼우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눈앞에 직관적으로 띄워준다.

특히 근전도(EMG) 센서를 활용한 제스처 컨트롤 기술은 작은 손목 움직임으로 조작이 가능해, 감염 우려로 기기 접촉이 제한적인 집도의에게 ‘핸즈프리’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여기에 소형화·배터리 효율·광학 성능 개선까지 더해지고 있다. 앤드루 보스워스 메타 CTO가 “스마트 글래스는 AI와 사람을 잇는 가장 자연스러운 창구”라고 언급했듯, 의료진은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도 바이탈 사인이나 영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투시력 갖춘 집도의…AR 내비게이션, 수술 정밀도 높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의료 선진국에서는 이미 스마트 글래스를 활용한 수술 솔루션 도입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어그메딕스(Augmedics)’는 AR(증강현실) 글래스 기반의 수술 가이드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이 시스템을 착용하면 환자의 척추 구조가 피부 위로 투영돼, 집도의가 마치 투시력을 가진 것처럼 척추 내부의 해부학적 구조를 실시간으로 보며 나사못을 삽입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별도의 모니터를 볼 필요가 없어 집중도가 유지되고 수술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프로프리오(Proprio)’ 역시 광학 센서와 라이다(LiDAR) 기술을 결합해 수술 부위를 3D로 시각화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는 의사에게 더 넓고 정확한 시야를 제공해 미세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 글래스 시장은 2030년 약 82억 6,000만 달러(한화 약 11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실리콘밸리 현지 전문가들 역시 “AR 산업은 VR(가상현실)과 달리 의료, 물류 등 현장 적용성이 뛰어나 시장 확장성이 매우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의료기기 및 IT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광학 렌즈, 초소형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하드웨어 제조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 참여하거나, 국내의 우수한 임상 인프라와 결합한 ‘한국형 의료용 AR 솔루션’을 개발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스마트 글래스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다. 의료진에게 ‘확장된 시야’를 제공하여 환자 안전과 수술 정확도를 높이는 필수적인 의료 장비로 진화하고 있다. ‘보는 시대’를 넘어 ‘현실을 확장하는 시대’로 진입한 지금, 우리 기업들이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