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결의대회 보다 결속이 필요하다!
[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의협이 또 투쟁모드에 돌입했다.
지난해 의대증원 사태로 촉발되었던 의료사태가 가까스로 수습국면에 접어드나 했는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악재들이 잇달아 불거지자 들고 일어서려는 것이다.
의협으로서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성분명 처방이나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 등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검토 중인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 방안 역시 개원가의 이해와 밀접하여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의료사회 내부의 여론이 들끓었고, 얼마 전에는 임시 대의원 총회까지 열렸다. 여기서 집행부 중심의 투쟁으로 가닥이 잡혔는데, 이로부터 출범한 집행부 주도의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가 마침내 궐기대회와 결의대회 같은 투쟁카드를 꺼내들었다.
의협 지도부로서는 현안은 막아야겠고, 그렇다고 당장 묘수가 없으니 ‘투쟁’이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시기적으로나 여건상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이 적절한 선택인지는 숙고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지도부가 기대하는 것만큼 의사들의 영향력을 과시할 집회의 장을 만들어 낼 동력이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은 지금 대다수 의사들이 현안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지난 2년여의 의료사태를 경험하며 집단행동에 거부감이 커졌으며, 최근 들어 의료사회 내부가 전문과목 위주로 각론의 이해에 집착하는 개인주의 내지는 소집단주의가 팽배하여 예전과 같은 구심점을 모으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의사들의 단체행동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둔 적은 항상 전공의들이 전면에 나섰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건이 대단히 변했고, 그들이 따라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는 전국의사 결의대회와 같은 집단행동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섣불리 밀어붙였다간 약해진 체력만 노출시키거나, 국민들로부터 소모적인 투쟁으로 외면 받을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의협 지도부가 막판에 ‘전국의사 결의대회’ 대신 ‘대표자 결의대회’로 수위를 낮춰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궤도를 수정하여 발표했다. 그것도 마뜩치는 않지만 기왕 공언했고, 준비가 진행된 상황이라면 짜임새 있고 질서 있게 개최하여 정부와 정치권, 나아가 국민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우리사회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절제력 또한 보여주었으면 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의협 범대위나 의사 지도부는 “장외 집회와 같은 ‘물리적인 투쟁’으로는 정책을 바꾸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알다시피 그동안 노정되어 온 각종 시책이며 현안들은 모두 관련 법률이 뒷받침하여 표출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정책 의지와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판단으로 각종 제도와 시책이 좌우되는 상황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계의 이해에 반하는 정부 시책이나 관련 법률이 잇달아 재개정 되는 과정에서 정부나 정치권이 의료계를 특별히 의식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정부나 정치권 공히 '국민이나 합리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비약하면 ‘의협은 표도 없고, 힘도 없는 집단’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게 전부라면 슬픈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라도 의협이 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그러기에 지금은 투쟁을 외치기보다 내부 결속을 고심해야 할 때라고 본다. ‘월급월만(越急越慢)하라’는 말이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뜻인데 현안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긴 하지만 서둘지 말고, 정책역량을 더욱 키우며, 의사회원들의 정서를 한곳으로 모으는 노력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여 힘이 모아진다면 정부나 정치권도 의료계를 얕보지 못할 것이며, 투쟁도 담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