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공허한 외침
국회미래연구원 인구포럼의 견강부회
한국회복기재활연구소 소장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원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국회미래연구원이 주최한 <제2회 인구포럼>에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보장체계 전환·노후소득 및 건강 보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발제와 토론이 이뤄졌다. 포럼 개회사에서 김기식 원장이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단순한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지원 확대가 아닌 구체적 대안 모색"을 강조한 점은 시의적절하다.
허종호 연구위원의 국민건강보험 발제는 재정 악화의 현실과 그 원인 분석에 있어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다. 내년부터 건강보험 재정 적자 전환, 2030년 누적준비금 소진 전망은 섬뜩한 경고다.
그러나 이 심각한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된 '공공보건의료기관의 확대' 주장에 이르면, 우리는 한국 사회가 '공공'이라는 단어의 주술에 얼마나 깊이 사로잡혀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는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주장이자,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일 뿐이다.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비현실적 대안: 마이더스의 손은 없다
허종호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지목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공공의료 확충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한다. 이는 발제 자료집에서도 '민간의료기관의 이윤극대화 전략이 건강보장제도 재정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직설적인 비판과 함께 '공공보건의료기관의 확대'를 주요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가 마이더스의 손이라도 되나? 공공기관의 확충이나 공공병원 인력의 증가는 곧바로 국민의 세금 증가로 이어진다. 재정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포럼에서 가장 비재정적인, 즉 천문학적인 세금 투입이 전제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공공분야의 확충이나 확대는 그 효과가 명확하고 불가피할 때만 극히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사안이지, 손쉬운 이념적 구호로 던져질 문제가 아니다. 공공성 강화를 부르짖는 순간, 이미 논의는 현실을 떠나 이념의 영역으로 치닫게 된다.
'공공의료' 개념의 모호함과 민간 의료의 현실 외면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의료'라는 개념 자체의 모호성이다. 발제문은 '민간'을 '이윤 추구'와 동일시하고 '공공'을 '영리적 측면에서 자유로운' 선(善)한 존재로 이분법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한국 의료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반 50%가 넘던 공공병상 비중이 1973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면서 현재 10%도 채 되지 않는 수준으로 감소했다. OECD 국가 중 민간병상 비중이 90%로 가장 높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핵심은 이 90%가 넘는 민간병원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는 틀 안에서 공공병상과 정확히 동일한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공공보건의료의 영역에 해당하는 활동(예방, 방역, 필수의료 등)을 민간의료기관도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다. 사실상 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공성을 기반으로 공공의료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민간 = 이윤 극대화'라는 단순한 등식으로 재정 악화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수익성 문제의 본질: '수가'가 아닌 '소유'를 탓하는 오류
일각에서 민간병원의 '이윤극대화'를 비판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수익성이 떨어져서 민간의료기관에서 행하기 힘든 의료행위'가 발생하는 현실이다. 필수의료, 혹은 회복기 재활치료와 같은 분야에서 민간이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민간병원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책정한 수가(酬價)가 원가조차 보전하지 못할 만큼 낮기 때문이다.
일례로 저출산 시대에 분만 인프라 붕괴를 걱정하면서도 분만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아 산부인과가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공공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수익성이 떨어져 민간이 하지 않으려 한다면, 정부는 그 '수익성'을 맞춰주면 될 일이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를 강제해놓고, '그래서 공공병원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이자, 정부의 정책 실패(수가 책정 실패)를 묵인하고 그 책임을 엉뚱하게 '민간의 이윤추구' 탓으로 돌리는 행위이다.
이러한 왜곡된 시선은 공공병원의 '테스트베드(testbed)' 역할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발제문은 공공병원이 '영리적 측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의 시범 기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안 되는, 특수한 환경의 공공병원에서 얻은 결과를 90%가 넘는 민간병원에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생태계가 다른 실험실의 결과가 어떻게 야생에 적용될 수 있단 말인가?
인구절벽 시대, ‘공공’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질 때
<제2회 인구포럼>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인구구조 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사회보장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서비스 전달체계 개편이라는 중요한 의제에 있어 '공공보건의료기관의 확대'라는 이념적이고 비현실적인 대안에 매달리는 것은 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재정 악화의 근본 원인을 '민간의 이윤추구'라는 손쉬운 타자에게 돌리고, 정작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합리적인 수가 책정'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로 비춰진다.
진정으로 건강보험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공공병원 확충'이라는 이념적이고 공허한 구호를 외칠 때가 아니다. 국민 세금을 들여 새로운 병원을 짓는 것보다, 이미 공공의료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90%의 기존 민간 의료기관들, 특히 필수의료와 재활의료 등을 담당하는 병원들의 '경영난'을 해소해 주는 것이 백번 더 효율적이다.
그들이 왜곡된 이윤추구(비급여 진료 등)에 매몰되지 않고, 정상적인 의료행위만으로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익성'을 정상화하는 것, 즉 합리적인 수가 조정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국회미래연구원이라는 권위 있는 기관에서, 인구절벽이라는 거대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논하면서 여전히 '공공 확충'이라는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암울할 수밖에 없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