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거나 앉을 수 있는 일상을 되찾고 싶다”
화농성 한선염 환자 김진수씨와 을지대병원 이중선 교수의 이야기
[의학신문·일간보사=김상일 기자]“뛰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걷거나 앉을 수 있는 일상을 되찾고 싶습니다.”
화농성 한선염 환자의 바람이다. 피부에 나는 ‘종기’정도로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는 화농성 한선염은, 사실 단순한 피부질환이 아닌 자가면역질환이다. 엉덩이, 겨드랑이, 사타구니, 여성의 경우 가슴 아래 부분에 재발적으로 반복적인 것이 특징이며, 종기 같은 것들 것 피부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그 아래에 용암처럼 농양이 터널을 형성한다.
진단 자체가 쉽지 않다. 짧게면 수개월, 길면 7~8년도 넘게 걸리는 진단. 그 이후에 치료 과정도 쉽지 않다.
항생제 치료와 생활습관 교정으로 치료를 시작하지만, 항생제 치료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 번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2년, 3년, 10년까지도 투병기간이 길어진다. 수술적 치료를 병행하기도 하고 생물학적제제 치료를 하기도 한다. 휴미라는 작년부터 화농성 한선염 치료에 급여가 적용되었지만, 또 다른 생물학적제제 옵션인 코센틱스는 2023년 9월 허가 확대 이후에도 아직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이에 의학신문은 을지대병원 이중선 교수<사진>와 화농성 한선염 환자 김진수(가명, 30대)씨와 만나 화농성 한선염 질환을 비롯해 치료 여정에 대해서 들어봤다.
화농성 한선염 환자 김진수(가명, 30대)씨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엉덩이에 종기가 처음으로 났다. 당시 조퇴가 어려운 분위기였지만, 고3이 조퇴를 할 정도로 증상은 심각했다. 20대 초반에는 통증은 크지 않았지만 피가 너무 많이 났고, 증상은 겨드랑이까지 확산됐다.
병원 방문을 미루던 그는 결국 외과에서 화농성 한선염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재발은 반복되었고, 군 복무도 면제됐다. 공익 판정을 받았지만 증상이 심해 훈련조차 받지 못했다. 최근 서울로 병원을 옮기고 수술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상태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김 씨는 대인관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느낀다. 고름과 염증으로 인한 냄새는 드레싱과 패드로도 가릴 수 없고, 지하철에서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릴 수 없을 만큼 위축되었다. 운동을 피하게 되고, 소극적이고 예민해졌다.
치료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동정적 프로그램 참여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치료로 이어지지 않았다. 많이 좌절스러웠다”고 그는 말했다.
을지대병원 이중선 교수는 “기존 치료제가 잘 듣는 경우도 있지만, 치료 실패 시 약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대안이 없는 상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환자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며, 치료가 더 진행되지 못하고 예전 치료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센틱스는 2023년 9월 허가 확대 이후에도 아직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화농성 한선염 등록 기준 환자가 1만 2500명이 안 된다. 전체 인구의 0.02% 수준"이라며 "희귀질환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환자단체가 없어 목소리가 작다. 약이 허가가 됐다고 해도 있으나마나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급여가 적용된다면 의료현장에서는 실효성 있는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기존 치료제를 쓸 수 없는 환자, 투여 횟수가 부담스러운 직장인 등에게 새로운 옵션이 생기며,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화된 치료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급여가 되지 않으면 기존 치료 사이클 안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발병률이 낮은 질환이라고 해서 삶의 질이 괜찮은 게 아니고 특히 희귀 난치질환은 더 어려움이 많다. 제도적 혜택도 부족하고 사회적 인식도 낮다"며 "정부 당국 관계자들은 화농성 한선염 환자들의 이 점을 꼭 참고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화농성 한선염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제대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스무 살 초반 때의 일상을 살고 싶고 어러한 일상이 저에게는 제일 감사한 욕심"이라며 " ‘일상’을 욕심내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일상이다. 요즘은 뛰고 싶다는 것도 욕심이고, 걷거나 앉아 있을 수만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