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의사의 발걸음이 곧 복지다
(‘통합돌봄 현장, 의사가 집으로 옵니다’저자)
[의학신문·일간보사] 고령화 속도는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졌다. 요양병원,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방문요양 등 기존의 돌봄 체계만으로 고령화의 큰 파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국가 재정과 간병 인력이 부족하고, 돌봄의 질도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정부는 시설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돌봄의 축을 옮기려 한다. 바로 커뮤니티 케어, 통합돌봄이다. 의료-요양-돌봄을 한 축으로 묶는 정책이다.
정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고령자를 요양시설로 옮기지 않고 ‘살던 집에서, 가족과 함께,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부는 국가가, 일부는 가족이 돌봄을 제공한다. 이미 시범사업 결과에서 시설 돌봄보다 비용이 많이 절감된다는 데이터가 있다. 집에서 모시고 임종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효율성뿐 아니라 삶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령화 현장은 거리에서 드러난다. 방문 진료를 하면서 길거리에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정부, 양주, 연천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강북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 변화가 바로 한국 사회의 고령화 지표다. 몸을 움직일 힘이 사라지고, 소비의 중심이 이동에서 배송으로 옮겨간 사회다. 쿠팡은 성장했지만, 홈플러스는 위태롭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병원으로 이동 대신, 의료가 환자에게 가야 한다.
방문진료는 시대의 요청이며 고령사회의 필수다.
혈압, 당뇨,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같은 만성질환 환자가 병원에 오기 위해서는 보호자 한 명이 하루를 비워야 한다. 그 부담이 가족을 지치게 만든다. 반면 의사가 찾아가면, 환자는 익숙한 공간에서 안정을 얻고, 의사는 그의 삶 속에서 병을 치료한다. 냉장고 속 음식, 약 봉투의 위치, 가족의 대화까지 진료의 단서다. 이것이 병원 진료와 다른, 생활 기반 의료의 가치다.
의사의 참여 없이는 통합돌봄은 없다. 문제는 의사의 참여다.
방문진료는 시간과 체력이 많이 들고, 수가도 낮다. 이동과 문서 작업, 보호자 상담까지 포함하면 한 명의 환자에게 두세 배의 시간이 든다. 그래서 의사들의 참여가 낮다. 하지만 의사가 없으면, 통합돌봄은 이름뿐인 제도가 된다. 국가의 재정, 복지 인력, 돌봄 체계가 있어도, 의사가 현장에 없으면 환자는 의료를 받지 못한다.
결국 커뮤니티 케어의 성공 여부는 의사의 참여에 달려 있다. 의사의 참여를 늘리기 위한 해법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첫째, 방문진료 수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이동 시간과 행정 부담을 고려한 보상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 단위 협력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의사 한 명이 모든 걸 감당하기 어렵기에, 방문간호사·사회복지사·물리치료사 등 팀 기반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사회복지사의 역할도 중요한데, 사회복지사 수가가 없다. 셋째, 의료정보의 디지털화다. 원격 모니터링, AI 문서 자동화, 전자 서명 시스템이 확산되면 진료 현장의 부담이 줄어든다. 넷째, 교육과 인식 개선이다. 의사들에게 방문진료는 단순한 진료가 아니라, 고령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래 의료의 핵심 분야임을 알려야 한다.
시대는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젊지 않다. 노인이 많아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의사의 방문은 복지의 시작이다. 방문진료는 과거의 의료가 아니라, 미래의 의료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세대 간 연대를 위해, 지금이야말로 더 많은 의사가 길 위로 나설 때다. 그 길에 환자의 삶과 존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