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 출혈 정복 신호탄 ‘제이다’, 세쌍둥이 자연분만 성공 사례로 증명
음압 걸어 자궁 수축 신속대응, 수혈·동맥 색전술 부작용·자궁 적출 위험 줄여 분당서울대병원 박지윤 교수 “첨단 장비와 사명감, 고위험 산모와 태아 지킨다”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분당서울대병원은 고위험 산모가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종착지 같은 곳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가능한 최신 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최초로 산후 자궁 출혈 조절·치료 의료기기 ‘제이다 시스템(Jada System)’을 도입해 산후 출혈 치료에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는 국내 출시 전부터 한국오가논 측에 직접 수소문할 정도로 새로운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산부인과 박지윤 교수<사진>의 한 명의 산모라도 더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됐다.
최근 병원 개원 이래 100번째 세쌍둥이 자연분만을 성공시키며 또 한 번 주목받은 박지윤 교수는 당시 제이다 시스템을 활용해 자궁무력증으로 인한 산후 출혈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그는 “세쌍둥이 임신은 산모의 신체적 부담이 10kg에 육박해 조기 진통, 임신중독증은 물론, 분만 후 심각한 산후 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홍수 같은 출혈, 5분 만에 멈춰…자궁 적출 가능성 감소
태반 자체가 혈관 덩어리이다 보니 분만 후 떨어져 나가면서 출혈이 세쌍둥이 분만 시 마치 홍수처럼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박 교수는 분만 전, 제이다 시스템 사용 계획을 미리 세우고 산모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다.
그는 “출혈이 심해지면 수혈, 동맥 색전술, 심하면 자궁 적출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새 의료기기를 통해 이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동맥 색전술은 자궁 동맥을 막아 지혈하는 시술이지만, 혈류 차단으로 인한 염증이나 괴사, 향후 가임력 저하 등의 부작용 우려가 존재했다. 박 교수는 “색전술 후 다음 임신에서 태반 문제 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며 “제이다 시스템은 색전술을 피하고 자궁 적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산모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분만 후, 예상대로 출혈이 심했지만 제이다 시스템 삽입 후 얻은 결과는 놀라웠다. 초음파 상으로 자궁 내 장치 안착이 확인됐고, 삽입 1분 이내에 자궁이 수축하며 육안으로도 공처럼 부풀었던 배가 줄어드는 모습이 관찰된 것. 출혈은 5분 이내에 멈췄다.
박 교수는 “음압을 걸어 자궁을 수축시키는 기전이 내부를 부풀려 압박하는 풍선 압박술과 다른데, 실제로 매우 빠르게 출혈이 줄었다”며 “산모는 다음 날 스스로 걸어 다닐 만큼 빠르게 회복해 2~3일째 아기들과 무사히 퇴원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16개 병원서 진행된 RUBY 글로벌 임상 연구에서 확인된 92.5%(자연분만)의 출혈 조절 성공률에 필적하는 결과다.
의료진·산모 모두 ‘윈윈’…개인 병원 전원 부담 줄일 것
이처럼 제이다 시스템의 도입은 의료 현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박 교수는 “의료진에게는 기존 압박 풍선과 삽입 과정이 유사해 사용이 쉽고, 응급 색전술 준비에 소요되는 30분 이상의 시간을 벌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배액관을 통해 출혈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산모 입장에서는 수혈이나 추가 시술, 자궁 적출의 공포에서 벗어나 가임력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출혈이 조기에 억제되면서 회복 속도가 빨라져, 짧은 시간 안에 아기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박 교수는 제이다 시스템이 개인 병원의 진료 환경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산후 출혈 발생 시 상급병원으로 급히 전원하지 않고도 1차적으로 출혈 조절을 시도할 수 있어, 전원 부담을 줄이고 산모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신생아 중환자실 부족으로 전원이 어려운 지방 병원의 현실에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만삭에 건강하게 분만했지만 태반 문제로 응급 전원된 저위험 초산모에게도 제이다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삽입 2시간 만에 스스로 걸을 정도로 회복했으며, 고위험 산모-태아 집중 치료실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날 장치를 제거하고 원래 병원으로 돌아갔다.
박 교수는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산후 출혈이 발생한 저위험 산모에게도 큰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다”며 “보건복지부 고위험 임산부 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비용 부담도 덜 수 있어 환자 만족도가 높았다”고 덧붙였다.
“멸종위기 ‘붉은관두루미’ 후배들과 고위험 산모 지킨다”
한편 2021년부터 고위험 산모 진료에만 집중하고 있는 박지윤 교수는 “반드시 대학병원에 와야만 하는 산모들을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하는 네 명의 후배 산과 의사들을 멸종위기종인 ‘붉은관두루미’에 비유하며, 소명의식을 함께하는 동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수십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어렵게 임신한 산모, 아이를 잃고 다시 임신한 고령 산모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분들을 돌보는 것이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새로운 장비와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고위험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